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연구자로서의 마음가짐

강형구 2023. 2. 21. 17:24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 완벽하게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거의 없을 거라 본다. 그러나 자신의 논문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지 않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그만큼 갖은 고생을 하면서 쓴 논문일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기준을 들이대면 나의 박사학위 논문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논문이겠지만, 나 스스로 나의 학사 및 석사학위 논문을 생각하면 나의 박사학위 논문은 그간의 내 과학철학 연구를 집약한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졸업이다. 신신애의 노랫말 중에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라는 말이 있다. 정확히 그 노랫말처럼, 내가 잘난 연구자든 못난 연구자든 상관없이 나는 과학철학 연구자다. 내 논문이 좋은 논문이든 평범한 논문이든 상관없이, 이제 내가 연구자로서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으니 지금까지 나에게 도움을 주셨던 고마운 분들에게 연락을 드리고 논문을 보내드릴 준비를 한다. 그것은 기본 중의 기본에 속하는 자세이자 태도일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모든 연구자를 존중하고 존경한다. 그리고 나는 이 연구자들과 당당하게 선의의 경쟁을 해나가려 한다. 연구자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그 무엇보다도 연구 실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연구 실적은 한국연구재단에 공식적으로 등록된다. 나는 어떤 연구자가 대학의 정규직 교수인지 그렇지 않은지보다는 그 연구자가 어떤 연구 실적을 냈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객관적인 연구 실적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변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존경할만한 연구자 선생님들의 경우, 한국연구재단이 운영하는 연구자 정보 시스템에서 그 연구 실적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성실하고 뛰어난 연구자들을 존경한다. 어떤 사람이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다는 것은 연구자로서 그 사람에 대해 느끼는 나의 존경심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그 사람이 어떤 대학을 졸업했는지도 사실 나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물론 모교의 개념은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학연 중심주의가 지금보다 훨씬 더 완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어느 대학을 졸업하든 박사학위를 갖고 있고 객관적인 연구 실적이 출중하다면 그 사람은 연구자로서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

 

   그리고 나는 가능한 한 내가 ‘과학철학’이라는 독특한 연구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특이한’ 사례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철학자가 무엇인가 독특하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고 오히려 그런 생각이 일종의 독이 될 수 있다. 과학철학이란 오늘날 다수로 분화된 여러 전문 분야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과학철학 연구자는 ‘연구자’라는 의미에서 다른 많은 연구자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 과학철학이라는 분야는 특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른 분야보다 열등하지도 않다. 다원적인 학문의 세계 속 하나의 분과일 뿐이다.

 

   모든 분과 학문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이 자기가 속한 분과 학문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려 하듯, 과학철학 연구자 또한 마찬가지의 노력을 한다. 학문으로서의 과학철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것이 우리 사회를 위해서 무엇인가 가치 있는 기능과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과학철학만이 제공할 수 있는 철학적이면서도 유용한 통찰이 있다면, 과연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일반 기업의 직원들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여 그것을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고심하는 것과 유사하게, 나는 과학철학 연구자 역시 자기 연구의 성과가 어떻게 동료 학자나 일반인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것인지를 늘 치열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참 ‘연구자’라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 교수님들께는 죄송하지만, ‘교수’라는 이름보다는 ‘연구자’라는 이름이 내 취향에 딱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