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서울대학교 이학박사 학위논문을 제출하는 심정

강형구 2023. 2. 5. 17:34

   나는 아직도 내가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실감이 나지 않으며 다소 어리둥절하게 느껴진다. 우리 집안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사람은 내가 최초이다. 서울대학교에 학부생으로 입학한 것(2001년) 역시 우리 집안에서 내가 최초였다. 최초라는 것에는 좋은 의미도 있지만 그만큼 ‘의외’라는 의미도 있다. 가족 중에서는 계속 학문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주변에 상의할 사람도 딱히 없이 우리 집안에서 계속 학문 연구를 해왔다.

 

   적절한 조언자나 역할 모델이 있었다면 모를까,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비교적 독립적으로 학문의 길을 걸어왔고 그만큼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나는 학부를 정확히 4년 만에 졸업했지만, 졸업 후 곧바로 석사과정에 진학했고, 석사과정 졸업 후에도 곧바로 박사과정에 진학했으며, 2023년인 이제야 비로소 졸업하게 되었다. 2001년에서 2023년까지 총 22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정말 긴 세월이었다. 이 세월 동안에 나는 한스 라이헨바흐(Hans Reichenbach, 1891-1953)라는 20세기 전반기의 과학철학자가 남긴 과학철학 저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정말 운이 좋았다. 만약 과학철학 분야의 연구 전통이 잘 정립되어 있고 연구자들이 많았더라면, 라이헨바흐에 관한 연구 실적이 많은 상황이었더라면, 아마 나는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과학철학이라는 분야, 라이헨바흐라는 과학철학자에 관한 연구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처럼 지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 박사학위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해방 직후에 학사 학위만을 가지고서 대학교수가 될 수 있었던 분들이 누렸던 행운과 비슷한 종류의 행운이었다. 시대를 잘 타고난 것이다. 혹자는 “그렇게 연구 전통이 희박했기 때문에 연구가 더 어렵지 않았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묻는 것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나는 이번 경우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나는 1982년생이다. 나의 첫 번째 지도교수이신 조인래 교수님은 1953년에 태어나셨다. 나의 아버지께서 1953년에 태어나셨기에, 나와 조인래 교수님 사이에는 대략 한 세대 정도의 차이가 있다. 나는 철저히 한국적인 맥락 아래에서 태어나 공부했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으며,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거쳤다. 과학철학 연구자인 나에게는 명백한 역사적 한계가 있다. 그런 한계가 있으므로, 나 이후의 과학철학 연구자들은 아마 그런 나의 한계를 딛고 더 나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내가 후대의 과학철학 연구자들을 위한 디딤돌의 역할을 할 것이라 예상한다. 후배들은 나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한국의 영화와 음악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이 잘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영화와 음악 분야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하면 세계에서도 가장 잘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과학철학 분야는 그와 다르다. 앞으로 한동안은 많은 학자의 시행착오와 노력이 필요하고, 그렇게 토양을 더 단단하게 다진 후에야 제대로 된 성과물이 나올 것이다. 과연 세계적으로 빼어난 과학철학자가 한국적인 학문적 토양 위에서 나올 것인지, 나온다면 그게 대체 언제쯤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대한민국의 과학철학 계보에서 대략 3세대 정도에 속하는 나는, 여전히 ‘과도기적’ 인물이다. 스스로 ‘과도기적’ 인물임을 인정하는 것을 대체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늘 현실은 냉정하게 파악하고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아무런 환상과 꾸밈없이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현재의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실효성 있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결국 지금 나와 내 주변 환경이 내가 직면하고 있는 ‘필드’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너의 필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