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우리 사회에 실제로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과학철학’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이에 관한 설명을 찾을 수 있고, 과학철학을 전공한 교수님들께서 우리나라 대학 곳곳에 자리를 잡고 계신다. 대학들에서는 과학철학 강의를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고, 과학철학 관련 책을 시중의 서점들에서 살 수 있으며, 과학철학 관련 각종 교양 강의와 특강 역시 여러 기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과학철학’은 우리 사회에 잘 자리 잡은 사회적인 현상이며 그 존재를 부정하기 어렵다.
자신만의 과학철학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거치며 자신만의 훈련을 수행해야 한다. 기준을 너무 높게 세울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재능을 타고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지적 재능이 평범하다고 해서 과학철학을 하고 싶은 나의 개인적인 욕망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나는 과학철학을 잘하고 못 하는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정말 과학철학을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해라. 그냥 내 스타일대로 하면 된다. 내가 내 스타일대로 나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처럼, 나는 내 스타일대로 과학철학을 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법은 없지 않은가.
그렇다 하더라도 제도적인 규칙은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계속 대학원에 가서 과학철학을 연구하고 싶다고 하자.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대학원 입학시험을 치러서 합격해야 한다. 그게 국내 대학원이든 해외 대학원이든 크게 상관은 없다. 학부 시절의 학점이 좋지 않을 경우, 좋지 않은 학점을 만회하기 위한 전략을 어떻게든 찾아서 이를 극복해야 한다. 만약 학점이 좋지 않아 A 대학의 대학원에 입학하지 못했을 경우, 그에 대한 대안으로 B 대학의 대학원에 지원하거나 아니면 다시 좀 더 준비하여 A 대학의 대학원에 지원한다. 이렇듯 온갖 노력을 했는데도 대학원에 입학하지 못한다면 계속 과학철학을 연구하기 힘들다.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이다.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은 다르다. 박사 과정의 경우 정말 내가 계속 과학철학을 하고 싶어야만 이 과정을 끝낼 수 있다. 나는 이때 열정과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열정과 의지가 있다면 주어진 제도적 여건 속에서 어떻게든 졸업 기준을 충족시켜서 졸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계속 과학철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 의지에 맞는 수준의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고,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결국에는 졸업할 수 있다. 단, 졸업하는 것이 곧 훌륭한 과학철학 연구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졸업은 과학철학을 계속 연구하고자 하는 나의 바람과 의지와 노력의 산물이지, 그것이 과학철학 분야에서 나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이렇듯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훈련을 통과하여 정식 연구자가 되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현상’인 ‘과학철학’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데 참여할 수 있다. 대학에서 과학철학 관련 교과목들을 강의하거나, 과학철학 관련 학술지 논문을 심사하거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철학 주제에 관한 특강을 할 수 있다. 당연히 계속 과학철학 관련 책과 논문을 읽고 연구하여 자신만의 학술논문을 집필할 수 있다. 이때 과학철학이라는 나의 연구 분야가 특별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학문 분야가 있고 과학철학은 그들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학문 분야의 연구를 할 뿐이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의 기준과 욕망을 따르라는 것이다. 과학철학을 정말 하고 싶은가? 그럼 해라. 재능을 따르지 말고 욕망을 따라라. 다만 사회적 제도의 여러 기준은 엄격하게 지켜라. 그 기준을 따르지 않고서는 나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다. 주어진 제도적 여건 속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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