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독립적인 과학철학 연구자

강형구 2022. 12. 4. 16:58

   나는 나 자신을 독립적인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생각한다. 왜 과학철학인가?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나는 아이였던 시절부터 자연경관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꼈고 그것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을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되고자 했다. 나는 중학교 시절 공부를 곧잘 했기 때문에 물리학자가 되기 위해 내가 살던 도시인 부산에 설립되어 있던 부산과학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하지만 과학고등학교의 수업에서 나는 내가 바랐던 과학 수업을 들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나는 도서관 혹은 다른 친구들의 책꽂이에서 찾은 ‘과학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자퇴원을 내고 학교에서 나왔다. 나는 부산 시내의 도서관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읽었다. 대부분 과학의 역사와 철학에 관한 책들이었다. 나는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교육청에서 주관한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는 아무런 준비 없이 무난하게 합격했다. 하지만 검정고시와 수학능력시험은 달랐다.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학생들을 줄 세우기 위해 고안된 고도로 발전한 제도였다. 독학을 해서는 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집 근처에 있어 걸어 다닐 수 있는(20분 정도 거리의) 대입 입시학원에 다녔다.

 

   나는 내가 속한 사회가 제시하는 제도와는 늘 적절하게 타협하지만, 그 제도에 완전히 동화되지는 않는다. 나는 1년 동안 입시학원에 다니며 수능시험 준비를 했는데 매달 8만 8천 원을 내고 학원에 다녔다. 모의고사 성적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학원에서 학원비를 감면해주었기 때문이다. 학원에는 재수생, 삼수생이 많았다. 고려대, 연세대에 합격했다가 다시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입시 준비는 내 나이의 한국인이 해야 하는 일이었고 나는 그저 내게 주어진 그 일을 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과학철학을 공부하고 싶었고, 과학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과학사를 공부해야 했다. 수능시험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나는 철학과로 갈 셈이었다.

 

   서울대학교에 진학하게 된 것은 그냥 ‘운’이었다. 어떤 대학에 갔든 나는 철학과로 갔을 것이다. 이는 우연히 내가 리처드 뮬러의 [나우 : 시간의 물리학]과 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을 번역하게 된 것과 같다.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도 나는 내가 원하는 과학철학 수업을 수강할 수 없었다. 조인래 교수님은 너무나 훌륭한 철학자이셨음을 결코 부정할 수 없지만, 교수님께서 내가 바라는 바의 과학철학을 연구하시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대학에 다니면서도 도서관에서 스스로 과학철학을 공부해야 했다. 물론 조인래 교수님께 너무나 감사드린다. 나를 대학원 석사 및 박사과정에 받아주셨기 때문이다. 교수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우리나라의 정식 교과과정에서 과학철학 연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나는 ‘독립적인 과학철학 연구자’이다. 이것이 나의 본질적인 정체성이며 이는 나의 고등학생 시절 이래로 변한 적이 없다. 물론 나는 우리 사회의 제도를 아예 무시하지는 않으며 늘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해왔다. 학부 과정, 석사과정을 졸업했고, 곧 박사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나는 결코 지금껏 모범생이었던 적이 없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과 권리의 범위에서 나는 항상 타협하지 않고 싸워왔다. 아마 내가 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국내 주요 대학에 정식으로 임용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울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정체성인 ‘독립성’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나 자신의 방식대로 과학철학을 연구해 나갈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저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나의 본질적인 정체성은 ‘독립적인 과학철학 연구자’이며, 내가 가장 잘하고 내가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과학철학 연구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부수적이고 부차적인 것,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 어떤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든 매일 꾸준히 과학철학을 연구할 것이고 그 연구 성과를 세상에 남기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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