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인공지능 시대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철학하기

강형구 2023. 3. 28. 16:28

   최근 몇 개월 동안에 나는 자신의 비교 대상에 ‘인공지능’을 포함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과연 나는 몇몇 질문들에 대해 내가 인공지능보다 더 뛰어난 대답을 할 수 있을지 묻고, 특정한 텍스트를 내가 인공지능보다 더 잘 번역할 수 있을지 묻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몇 회 거듭한 결과, 이런 질문을 하고 비교를 하는 것이 나의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인공지능은 인간 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이제 인간은 본격적으로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인간이 하는 일을 상당 부분 인공지능이 대신 하게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변할수록 더 중요해지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인간답게 잘 살아갈 것인지의 문제다.

 

   나는 박사학위를 받고 한동안 내가 뭔가 많이 달라진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한 달 정도 지났다) 현실 감각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과학철학 연구자, 특히 논리경험주의의 역사와 철학 연구자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은 명확하다. 올해 상반기에 라이헨바흐의 [경험과 예측(Experience and Prediction)]을 번역하고, 하반기에는 파울리의 [상대성 이론]을 번역한다. 번역기가 고도로 발달한 현 상황에서 직접 수기로 천천히 번역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껏 거듭 말한 바 있듯, 직접 손으로 써 가며 한 문장씩 천천히 번역하는 것은 상당한 ‘학습 효과’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인간으로서 그러한 ‘학습 효과’를 얻기 위해 직접 번역하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는 텍스트들은 번역기를 돌려 읽고 이해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또한 나는 나 스스로 ‘아인슈타인 전문가’로서 인정받고자 노력한다. 지난주 모 국립대학교에서도 ‘독특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나는 내가 소속된 국립대구과학관에서도 아인슈타인에 관련한 주제로 여러 번 특강을 했으며, 한국도서관협회에서 주관하는 ‘도서관 지혜학교’ 사업에도 아인슈타인을 주제로 삼아 지원했다. 국내에서 아인슈타인 전문가로 성장하여 활동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과 관련된 과학사 및 과학철학 연구를 국내에 소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물리학과 관련하여 과학자들과(특히 물리학자들)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헨바흐의 [경험과 예측]을 번역할 경우, 이 책과 관련된 연구 논문이 최소 2편 이상은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아인슈타인과 관련된 특강 및 강연을 진행할 경우, 이 과정에서 아인슈타인을 과학사 및 과학철학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단행본 1권의 원고가 탄생할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물론 이렇게 산출되는 원고를 어떤 방식으로 출판할 것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박사학위를 얻게 되면서 약간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한국연구재단에서 매년 시행하는 저술지원사업에 지원할 수 있고, 대학 강사로서 출판지원사업에 지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공지능에 관련해서는 별도의 연구를 하지 않는다. 내가 원래 연구하는 분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연구가 나의 현 상황에서 절실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나는 앞으로 인공지능과 부대끼며 살 것이고, 특히 인공지능이 번역자로서의 나와 강력하게 경쟁할 확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그러한 경쟁은 현실적이며 나로서는 피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직면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고,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그럴수록 나는 내가 하기로 계획했던 일에 더 집중하는 것, 인공지능을 나의 일을 더 잘하기 위해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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