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694

예측 가능한 사람

나는 내가 아주 높은 정도로 예측 가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어떤 사람이 예측 가능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훌륭한 실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예측 가능하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는 커진다.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 중 뛰어남이나 탁월함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없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 평균 이상의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이며 그저 필요한 것은 수고와 노력일 뿐이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주어진 일을 매일 규칙적으로 착실하게 해 나가는 것에 아주 큰 가치를 둔다. 심지어 그런 착실함과 성실함이 탁월함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라고까지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가치 판단의 문제라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나의 관심은 기본적으로 철학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일상 이야기 2022.12.02

연구의 재미

오늘은 하루 내내 학술지에 투고했던 논문을 수정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오전에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난 후 하원 전까지 계속 수정했고, 아내가 퇴근한 뒤 시간을 내서 계속 수정했다. 방금 막 수정한 원고를 다시 투고하고 나니 기분이 후련하다. 그러면서도 상당한 재미가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올해 2권의 번역서를 출간했고 2편의 학술논문을 게재했다. 방금 막 1편의 학술논문을 수정했고 또 한 편의 학술논문이 심사를 기다리고 있으니, 운이 좋으면 올해 4편의 학술논문이 게재될 수 있는 셈이다. 다른 연구자 선생님의 학술논문 심사도 3번 정도 했다. 나는 이렇게 나 스스로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훈련하고 있다. 나한테 딱 맞고 재미가 있다. 아직 영문 학술논문의 벽을 넘지는 못했고 이것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우리말로..

일상 이야기 2022.11.25

시행착오 대장

학위논문 수정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느낀다. 그중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참으로 시간과 공간에 관한 철학적 논의의 전통이 제대로 자리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국내의 연구 전통이 제대로 자리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으니, 연구 과정에서 여기 부딪히고 저기 부딪히며 온갖 시행착오들을 겪지 않을 방법이 있겠는가. 내 생각에 만약 내가 시간과 공간의 철학적 논의 전통, 특히 상대론적 시간과 공간에 관한 철학적 논의 전통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소화해서 이에 관한 정식 연구서를 우리말로 출판한다면, 오직 이것만으로도 진정 우리나라 과학철학계를 위한 중요한 공헌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실로 내가 맨땅에 여기저기 머리를 박으면서 연구를 해나가고 있다고 느낀다. 진행 속도는 참으로 더디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매일 꾸준히

나는 과거지향적이지도, 미래지향적이지도 않고, 그저 현재에 집중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무엇인가를 하고 싶으면 별로 고민하지 않고 그냥 하려고 시도한다. 그렇기에 내가 신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인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나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에 대해서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오늘 학생들이 수학능력시험을 치른다고 한다. 나는 22년 전에 시험을 치렀다. 그때 나는 그냥 일하듯 하루하루 열심히 공부했고, 가끔 모의고사 성적이 나오면 성적에 맞춰서 내가 입학할 수 있는 대학과 학과를 확인했다. 나는 철학과에 가고 싶었으므로 모의고사를 보면서 나 정도 실력이면 고려대학교 철학과 정도를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후 모의고사 성적이 계속 오르면서 목표 대학의 수준이 올라..

일상 이야기 2022.11.17

연구하는 아빠

나는 강의를 즐긴다. 올해 가을부터 진행하고 있는 경상국립대학교에서의 과학철학 강의는 재미있다. 특히 나는 [비판적 사고] 수업을 즐긴다. 정언 논리, 명제 논리가 재미있고, 논리적인 문제를 푸는 것이 재미있다. (물론 잘하는 것은 아님) 이와 더불어 나는 수학 문제나 물리학 문제를 푸는 것에서도 재미를 느낀다. 만약 내가 과학철학이나 과학사 강의가 아니라 다른 강의를 할 수 있다면 내가 정말 해보고 싶은 강의는 일반 물리학이나 일반 수학 강의다. 물리학사, 수학사 강의도 해보고 싶다. 구체적으로 말해 이런 강의를 준비하면서 쏠쏠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그냥 내 개인의 적성 문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적성은 연구인 것 같다. 구체적으로는 과학철학 연구다. 그래서 나는 내가 대학원에 ..

일상 이야기 2022.11.08

박사학위 논문 예비 심사를 치르다

어제 저녁 박사학위 논문 예비 심사를 치렀다. 만약 최종 심사를 하게 되면 그 시점은 12월 말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최종 심사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열심히 수정해야 한다. 그저께 저녁부터 긴장이 되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어제 아침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난 후, 심사 초반부에 해야 하는 발표 연습을 심사 직전까지 했다. 심사에 들어가기 한 시간 전에는 진통제까지 먹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까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심사가 시작되니 힘이 났고 자신감도 생겼다. 말도 당당하게 잘했다. 하지만 여전히 논문 원고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왜냐하면 글은 써도 써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도서관에 논문을 제출할 때까지는 계속 고치고 고쳐야 한다. 그렇게 계속 고치..

일상 이야기 2022.10.29

현상론적 태도

해석과 의미 부여 활동에 지칠 때면 나는 나의 태도를 현상론적인 것으로 바꾼다. 나를 일종의 기계로 간주하여, 나의 감각 기관에 주어지는 다채로운 현상들에 집중하고 의식적으로 이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현상론적인 태도를 취하면 나 자신의 존재가 좀 더 경이롭게 느껴진다. 목 위에 두뇌를 달고 있는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상들을 파악하고, 분류하고, 정리하고, 무시하고, 계속 하나의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상론적인 태도를 취하면 나는 나라는 경이롭고 기괴한 하나의 자연을 만난다. 사람이 파충류의 감정 없는 눈과 복잡한 문양의 피부 표면을 보며 이질감을 느끼듯, 내가 나 속에서 만나는 자연은 내가 생각하던 나와는 이질적이며 내게 두려움을 준다. 그..

일상 이야기 2022.10.20

해야 할 일을 한다

어떻게 ‘선험적 종합 지식’이 가능한가? 이것은 18세기를 살았던 칸트의 낡은 물음이고 이 물음이 잘못되었다는 점 또한 밝혀졌지만, 나는 나 자신이 이러한 물음이 가진 직관적인 의의를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인간의 자연과학적 지식이 이토록 자연을 잘 설명하고 또 잘 예측하는 것일까? 과연 우리의 자연과학적 지식이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떻게 자연과학적 지식을 획득하고 구축하고 평가하고 교정해나가는 것일까? 나는 이런 현대적인 물음들이 전제하는 기본적인 직관이 칸트의 물음이 유래한 직관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칸트의 물음은 특별하게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뿐만 아니라, 건전한 사고 능력을 가진 일반적인 사람이 던질 수 있는 진지한 물음이라 ..

10월의 시작

어제는 처남의 결혼식(2022. 10. 1.)이라 가족들을 데리고 인천에 다녀왔다. 그래서 오늘은 다소 피곤하지만, 그래도 나는 10월 5일까지 지도교수님께 논문 수정본을 다시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만약 논문을 심사하게 되면 10월 말쯤 심사를 진행하게 될 것 같다. 논문 상태가 불량하면 심사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특히 유의해야 한다. 나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논리경험주의 시공간 철학의 역사적 재조명’이다. 논리경험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 한스 라이헨바흐의 [시간과 공간의 철학]이 1928년에 출판되었다. 그러니까 대략 100년 만에 그의 철학을 재조명하는 셈이다. 내가 알기로 국내에서는 이 주제로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논리경험주의 철학자 한스 라이헨바..

일상 이야기 2022.10.02

다시 시공간의 철학으로

결국 나는 다시 시공간의 철학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이렇게 돌아오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 학자는 라이헨바흐다. 그러나 리처드 뮬러와 리 스몰린의 책을 번역한 것은 나에게 시공간의 철학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큰 힘을 주었다. 뮬러는 실험물리학자의 관점에서, 스몰린은 이론물리학자의 관점에서 시간 흐름의 실재성을 옹호한다. 그리고 시간 흐름의 실재성은 라이헨바흐의 시공간 철학에서 옹호하는 관점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라이헨바흐의 논리경험주의 시공간 철학으로 돌아가는 것은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시공간의 철학을 실체론과 관계론의 관점에서 성찰하는 전통은 제법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미 상대성 이론이 등장하여 성공적인 이론으로 자리 잡은 이상,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