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누가 뭐라고 해도 매일 꾸준히

강형구 2022. 11. 17. 10:54

   나는 과거지향적이지도, 미래지향적이지도 않고, 그저 현재에 집중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무엇인가를 하고 싶으면 별로 고민하지 않고 그냥 하려고 시도한다. 그렇기에 내가 신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인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나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에 대해서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오늘 학생들이 수학능력시험을 치른다고 한다. 나는 22년 전에 시험을 치렀다. 그때 나는 그냥 일하듯 하루하루 열심히 공부했고, 가끔 모의고사 성적이 나오면 성적에 맞춰서 내가 입학할 수 있는 대학과 학과를 확인했다. 나는 철학과에 가고 싶었으므로 모의고사를 보면서 나 정도 실력이면 고려대학교 철학과 정도를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후 모의고사 성적이 계속 오르면서 목표 대학의 수준이 올라갔지만, 대학에 대한 집착은 없었다. 그냥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충실히 행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박사과정을 휴학하고 취업을 준비할 때의 상황은 이랬다. 아버지께서는 IMF 금융위기 이후 계속 적자를 내고 계신 상황이었다. 우리 집은 모아 둔 돈을 계속 까먹고 있었다. 게다가 가까운 친척이 우리 가족을 속이고 우리에게서 상당한 액수의 돈을 빌린 후 갚지 않게 된 상황이었다. 나는 그런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상황을 알게 되자 계속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교육대학을 비교적 늦게 졸업한 나의 누나는 교사 임용고시의 마지막 단계에서 불합격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당시 전반적으로 우리 집의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마음 편하게 박사과정에 다니기가 어려웠다.

 

   나는 늘 현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휴학 후 열심히 취직 준비를 했고, 다행히 6개월 만에 공공기관 취업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내가 공공기관에서 직장인으로서 생활하며 조직 내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성격상 나 자신을 잘 내세우지 않고 비교적 조용하게 지내는 편이다. 그래도 매일 책임 의식을 갖고 성실하게 살았다. 또한 나는 내 앞에 어떤 기회가 오면 고민하지 않고 도전한다. 나에게 행정기관에서 연구기관으로 이직이 가능한 기회가 생겼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전해서 합격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나는 계속 과학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과학철학 관련 책을 번역했다. 박사과정에도 복학해서 어떻게든 학점을 이수했다. 직장이 서울에서 대구로 이전한 뒤, 그때까지 이수한 학점이 모자랐기 때문에 어떻게든 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국내 대학원 교류 제도를 이용해서 모자란 6학점을 채웠다. 결혼하고 애들을 키우면서도 논문자격시험을 치러 합격했고, 아내의 원활한 복직과 육아와 나의 학위논문 작성을 위해 육아휴직을 신청한 후 매일 열심히 살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지금은 매일 학위논문을 수정하고 있다.

 

   이런 모든 일들을 돌아보면, 나는 그냥 열심히 사는 것에 가치를 두지만 무엇을 잘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내게 무엇인가를 잘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그렇다. 나의 박사학위 논문이 뛰어난 논문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뛰어난 논문을 쓰고 싶은 욕심도 별로 없다. 다만 나의 논문은 오래도록 내가 나름 연구한 성과를 담고 있고, 바로 그 점에서 나는 자부심을 느낀다.

 

   결론적으로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매일 꾸준히 과학철학을 연구한다. 과학철학 논문과 책을 읽고 요약하고 정리하고 그에 관한 내 생각을 쓴다. 과학철학 관련 책을 번역하기도 한다. 대학에서 과학철학 강의도 한다. 내가 어떤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와 상관없이, 내가 이렇게 계속 과학철학을 연구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냥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것이 내게 맞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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