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박사학위 논문 예비 심사를 치르다

강형구 2022. 10. 29. 13:07

   어제 저녁 박사학위 논문 예비 심사를 치렀다. 만약 최종 심사를 하게 되면 그 시점은 12월 말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최종 심사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열심히 수정해야 한다.

 

   그저께 저녁부터 긴장이 되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어제 아침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난 후, 심사 초반부에 해야 하는 발표 연습을 심사 직전까지 했다. 심사에 들어가기 한 시간 전에는 진통제까지 먹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까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심사가 시작되니 힘이 났고 자신감도 생겼다. 말도 당당하게 잘했다.

 

   하지만 여전히 논문 원고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왜냐하면 글은 써도 써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도서관에 논문을 제출할 때까지는 계속 고치고 고쳐야 한다. 그렇게 계속 고치는 과정에서 나의 철학적 입장과 논증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유려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글을 정말로 잘 쓰고 머리도 똑똑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훨씬 덜 고칠 것이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글쓰기다. 글쓰기는 과학 문제를 풀이하는 것과는 다르다. 철학적 글쓰기는 예술적인 작업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 고치면 고칠수록 더 맛깔나고 멋있게 다듬어진다.

 

   지금껏 논문 작업을 하면서 서론을 대체 몇 번이나 고쳐 썼는지 모르겠다. 제목을 바꾸고, 초록을 다시 쓰고, 서론을 다시 쓴 후, 초록과 서론의 달라진 문맥에 맞게 논문 본문을 전반적으로 다시 손봐야 한다. 어제의 심사 이후 다시 제목을 고치고 초록을 다시 쓰고 서론을 다시 쓴 후 본문 곳곳을 세밀하게 고쳐야 한다. 필요한 인용과 수식은 여기저기 추가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빼며, 논문의 논조도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감칠맛 나는 대화식으로 바꿔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글을 고치는 것에는 끝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글 쓰는 사람에게 구원은 다시금 ‘마감’이다.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논문을 준비하면서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내가 괜한 욕심을 부린 것인가. 학문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박사가 되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은 것 아닌가. 그냥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제 나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내년 2월에 최종적으로 도서관에 논문을 제출할 때까지는 끝까지 원고를 물고 늘어지고 고치고 또 고쳐서 그 내용이 내 머리에 못이 박히도록 만들어야 할 듯하다. 아마 대부분 박사과정 학생들은 다 이러한 과정을 거칠 것이다. 소화가 잘 안되고 체력적으로 지치며 머리도 많이 빠진다. 이 과정을 끝까지 견뎌내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그래도 내가 자랑스러운 건 논문 심사위원 선생님들 모두 우리나라 과학철학 분야의 권위자들이라는 점이다. 이런 훌륭한 선생님들을 모시고 나의 논문을 단련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참 감사하다. 앞으로는 이렇게 혹독한 훈련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예상한다. 대략 나에게는 논문을 수정할 수 있는 3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두 번 다시 나에게 오지 않을 귀한 시간이다.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마감에 맞춰 원고를 제출하고 나면 ‘진인사대천명’의 마음으로 훌훌 털어버리기로 결심한다. 하나의 일을 깔끔하게 끝낸 다음에야 비로소 온전히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에는 좀 쉬어야겠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다시 논문 수정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도서관에 논문이 등록되면 이것은 우리나라 시민 전체의 지적 자산이 된다는 생각으로 작업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논리경험주의 시공간 철학의 형성 과정과 그 의의에 대해 궁금함을 갖는다면, 그 사람은 나의 논문을 지침으로 삼아 자기 자신의 연구를 진행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의 논문은 내가 알지 못하는 미래의 과학철학자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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