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그렇게 연구자가 된다

강형구 2022. 9. 22. 15:49

   박사학위를 갖고 계시는 분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항일 것이라 짐작한다. 실로 진정한 연구자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 사람이 훌륭한 연구자인지 그저 그런 연구자인지는 사실 별로 상관이 없다. 애호가를 넘어서서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연구 주제에 대한 자신만의 독자적인 입장을 수립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독자적인 입장을 수립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우며 두려운 일이다. 뛰어난 연구자들이 이미 내어놓은 업적들 가운데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입장을 갖추어 내세운다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다.

 

   자신만의 입장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우선 내 생각을 일정한 분량을 갖춘 글로 써야 한다. 그다음 그 글을 통해 표현된 내 생각을 검토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반박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대개 그런 사람을 우리는 지도교수라 부르며, 이미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렇게 다른 사람과의 의견 교환, 토론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관점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나의 관점이 전적으로 옳을 수는 없으며, 박사학위가 그와 같은 완벽한 옳음을 요구하는 것 또한 아니다. 단지 어떤 독창적인 관점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옹호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시키면 된다.

 

   처음에 나는 다소 소극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했던 내용을 체계화시키고 정리하는 수준에서 논문을 쓴다고 막연하게만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 속에서는 나 자신의 독자적인 관점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박사과정에 입학한 이상 어떻게든 졸업해야겠다고 결심한 후, 논문자격시험을 통과하여 논문을 쓰는 과정을 거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돌아보면 나의 입장, 나의 직관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긴 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논문을 제대로 쓰기 전까지는 나 자신도 잘 몰랐다. 긴 시간을 들여 논문을 써가면서 대체 그것이 무엇이었는지가 조금씩 더 분명해졌다.

 

   사실 나는 처음에 그저 학위만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제대로 나 자신만의 관점을 확립해서, 내 분야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공헌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더 커졌다. 사실 나의 입장이 다른 사람과 비슷한 입장이라면, 나 자신만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없다면, 왜 내가 굳이 연구자가 되어야 하고 박사가 되어야 하는 걸까? 그냥 나 혼자서 공부하며 즐기면 되지 않을까? 그저 다른 사람들 앞에 내세울 수 있는 간판을 만들기 위해서, 대학에서 강의하기 위해서 학위가 필요한 걸까?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취득한 학위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간단히 말해 나는 논리경험주의의 시공간 철학을 옹호한다. 이 시공간 철학은 상대성 이론을 참조하여 형성된 철학이다. 상대성 이론만으로는 이 이론이 시간과 공간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 논리경험주의 시공간 철학은 세계 속 시간과 공간이 자연 시계, 측정 막대, 빛 신호와 같은 물리적 과정에 의해 파악된다고 주장한다. 이 중 빛 신호가 가장 중요하다. 빛 신호로 위상적 관계와 계량적 관계 모두 정의할 수 있다. 빛 신호로 정의된 위상적, 계량적 관계를 자연 시계와 측정 막대가 따른다는 것은 상대론 이전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적 사실이다. 설혹 시공간의 계량적 특성이 중력장의 존재와 강도에 의존하여 변하더라도, 시공간의 위상적 특성은 계속 유지되며 그런 의미에서 시공간은 실재한다. 시간적 질서로 공간적 질서를 정의하며, 시간적 질서는 빛 신호로 대표되는 인과적 과정에 의해 정의되므로, 시공간의 실재성은 곧 인과적 과정의 실재성이기도 하다.

 

   논리경험주의의 시공간 철학은 시공간을 바라보는 경험주의적 관점이다. 이 관점에서는 중력장 방정식에 의해 수학적으로 기술되는 시공간의 곡률 그 자체를 실재한다고 보지 않는다. 물리적 타당성의 관점에서 보면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이 뉴턴의 중력 방정식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세련된 방정식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수준에서 보면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 또한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상대성 원리, 최초 신호로서의 빛 원리, 등가 원리)에 기반하고 있으며, 우리의 경험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기술하는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이 방정식이 잘 작동하며 효과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 방정식이 그리는 수학적 표상이 곧 물리적 실재 자체라고 말할 수 없다. 만약 이후 우리가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 원리를 근본 원리로서 재발견하게 된다면(빛 원리나 등가 원리처럼), 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다시금 큰 변혁을 겪을 것이다.

 

   시공간 철학은 시공간을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이지 물리학 이론이 아니다. 하나의 철학적 관점에 요구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것은 그것이 현존하는 최선의 물리학 이론과 양립 가능한지 묻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 철학적 관점이 현존하는 이론을 정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물을 수 있고, 거기서 더 나아가면 그 철학적 관점이 향후의 이론적 탐구에 중요한 발견법적(heuristic)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물을 수 있다. 나는 이 세 가지의 물음 모두에 논리경험주의의 시공간 철학이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논리경험주의 시공간 철학은 시공간을 바라보는 경험주의적 철학이면서도 역사적인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유의미한 철학이다.

 

   이 지점에 이르면 나는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인다. 과연 그런가? 과연 논리경험주의의 경험주의적 시공간 철학이 내가 주장하는 것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시공간 철학인가? 아마도 여기저기서 신랄한 공격이, 특히 논리경험주의 시공간 철학을 비판하며 시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확립하고자 했던 학자들이 집중 공격을 퍼부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런 공격을 감수하지 못한다면 아마 나는 독립적인 연구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후 이런 공격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고 나의 입장을 철회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학문의 세계(과학철학)에서는 적지 않게 벌어진다.

 

   그런데 내 생각에 그게 바로 연구자가 되는 과정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입장을 수립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한 명의 독립적인 연구자가 성장한다. 박사학위는 쉽게 얻을 수 없다. 한 사람의 오랜 노력과 결단(commitment)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김건희 여사의 학위논문 표절 문제가 진정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대부분 오랜 기간에 걸쳐 갖은 고생과 노력을 통해 박사학위를 얻고 그 결과로 겨우겨우 한 명의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독립적인 연구자가 성장하는 이 소중한 전통을 우리의 대학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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