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연구의 재미

강형구 2022. 11. 25. 21:55

   오늘은 하루 내내 학술지에 투고했던 논문을 수정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오전에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난 후 하원 전까지 계속 수정했고, 아내가 퇴근한 뒤 시간을 내서 계속 수정했다. 방금 막 수정한 원고를 다시 투고하고 나니 기분이 후련하다. 그러면서도 상당한 재미가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올해 2권의 번역서를 출간했고 2편의 학술논문을 게재했다. 방금 막 1편의 학술논문을 수정했고 또 한 편의 학술논문이 심사를 기다리고 있으니, 운이 좋으면 올해 4편의 학술논문이 게재될 수 있는 셈이다. 다른 연구자 선생님의 학술논문 심사도 3번 정도 했다. 나는 이렇게 나 스스로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훈련하고 있다. 나한테 딱 맞고 재미가 있다.

 

   아직 영문 학술논문의 벽을 넘지는 못했고 이것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우리말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내게는 다른 나라의 말로 글을 쓰는 것에 관한 거부감 같은 것이 있다. 그런데 내년에는 꼭 영문 학술논문을 쓸 예정이다. 그래야만 과학철학 분야에서 진정한 연구자가 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내년 2월에 졸업하게 되면 내년 2월부터, 내년 8월에 졸업하게 되면 내년 8월부터 시작할 셈이다. 사실 나의 영어 실력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다. 조금씩 공부하고 노력하고 재미를 붙이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020년부터 학술지 논문 게재를 시작했으니 나는 아직 초보 연구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직장 다니면서 애 키우면서 집안일 하면서 연구하고 있는 내가 제법 대견스럽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닫는 진리란, 사람은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과학철학 연구를 하면서 사는 것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최근 발견한 멜로망스의 노래들을 하루 내내 들으면서 아침부터 밤까지 글을 고치는 일이 전혀 힘들지 않다. 아마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나를 참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어쩌겠나.

 

   내년에는 라이헨바흐의 [경험과 예측] 번역을 마무리하고, 파울리(Pauli)의 [상대성 이론]을 번역할 예정이다. 특히 나는 예전부터 청년 파울리의 상대론 해설 내용이 궁금했다. 라이헨바흐도 이따금 파울리가 쓴 글을 언급하곤 했다. 파울리의 책을 번역한 뒤 이 책을 주제로 논문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예를 들어 파울리의 해설을 슐리크, 카시러, 라이헨바흐, 카르납의 관점과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파울리의 관점을 에딩턴(Eddington), 바일(Weyl)과도 비교할 수 있다. 에딩턴과 바일의 책은 집에 있지만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앞으로 공부할 것들이 많이 있다. 과연 내년에 라이헨바흐의 [시간의 방향]까지 번역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 책도 꼭 번역해야 하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늦어도 내후년까지는 반드시 번역하고 싶다.

 

   사실 가능하기만 하다면 카르납의 [세계의 논리적 구조]도 번역하고 싶지만, 카르납까지 욕심을 내서는 안 될 것 같다. 너무 과하게 욕심을 부리다가 제풀에 지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국내에 카르납 연구자들이 꽤 있으므로 이들에게 카르납 연구를 부탁하기로 한다. 부디 카르납을 부탁합니다! 저는 라이헨바흐를 철저하게 맡을게요!

 

   앞으로 나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과학철학 연구를 상당히 즐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냥 크게 고민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연구를 계속해서 할 예정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니 재미있고 성실하게 살려고 한다. 오늘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하다. 맞다. 원래 나는 이렇게 소박한 사람이었어. 오래 전부터 삶에 딱히 별로 바라는 것도 없는 그런 사람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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