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강형구 2022. 12. 7. 11:36

   요즘 나는 바쁘면서도 한가롭다. 바쁜 이유는 계속 학위논문 원고를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도서관에 논문을 최종적으로 제출하기 전까지는 매일 보고 다듬고 다듬어야 할 것 같다. 한번 제출하면 길이 남는 나의 논문이기에 애정을 갖고 계속 수정하고 있다. 높은 수준의 정말 훌륭한 논문을 쓴다는 생각보다는, 지금껏 내가 연구한 내용의 핵심을 담아낸다는 생각으로 논문을 쓴다. 내 논문에는 지난 20년 동안의 연구 결과가 담겨 있고, 만약 어떤 사람이 내 논문을 일주일 만에 읽는다면 그만큼 확실하게 시간을 절약하는 셈이 된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내 논문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이 내가 했던 시행착오들을 겪지 않아도 되게 해주기 때문이다.

 

   바쁘면서도 한가로운 이유는 최근 다른 사람이 나에게 별다른 요청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2건의 번역 의뢰를 마무리했고 4편의 학술지 논문 심사를 했다. 특히 최근의 학술지 논문 심사는 아주 재미가 있었다. 학술지 논문 심사 의뢰는 늘 나에게는 즐거운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좋은 과학책 특히 물리학의 철학책을 번역하고 싶은데 출판사에서 [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 이후 연락이 없다. 그렇기에 한가로운 상황 속에서 틈틈이 라이헨바흐의 [경험과 예측]을 아주 조금씩 번역하고 있다. 하루에 2~3문장만을 번역할 때도 있다. 그렇게 아주 천천히, 틈틈이 짬을 내어서 번역한다. 언젠가는 끝이 날것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한가로우면 한편으로는 내 시간이 많아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아쉽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의 요청을 들어주면서 그들과 소통하는 것은 퍽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에게는 외부 의뢰가 들어오지 않더라도 할 일이 아주 많다. 라이헨바흐의 책들과 논문들을 번역해야 하고, 파울리와 에딩턴과 바일의 책을 번역해야 하며, 내가 번역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다른 책들도 제법 된다. 책들을 번역한 다음에는 그 책에 대한 논문을 쓸 계획을 갖는다. 파울리면 파울리의 책에 대해, 에딩턴이면 에딩턴의 책에 대해, 바일이면 바일의 책에 대해서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몇몇 물리학 논문들만(노벨상 수상 강연을 포함해서) 선별해서 번역할 필요도 있고, 라이헨바흐의 몇몇 책들([시간과 공간의 철학], [자연과학과 철학], [코페르니쿠스에서 아인슈타인까지])을 다시 번역(개정)할 필요도 있다. 내가 이런 과학철학 연구 작업을 한다고 해서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 나를 원할 것 같지 않다.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융합 등 요즘 유행하는 중요 주제들에 대해서 나는 제대로 연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항상 열려 있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부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수준의 일은 하지 못한다. 나는 내 능력의 범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그와 더불어 나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다른 사람의 도움을 요청한다. 나는 경제적으로 자립한 상태이기 때문에 나는 굳이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과학철학 연구가 특히 그렇다. 나는 아주 우수한 과학철학 연구자는 아니지만, 독립적인 방식으로 순수하게 우리나라 과학철학 발전을 위해서 연구한다. 나는 그렇게 비교적 중립적인 태도로 과학철학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스스로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나의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으므로 나의 도움을 바라는 사람은 얼마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참으로 좋아한다. 내가 손해 본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섬긴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기적으로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는 그 일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려 한다. 결국 그 일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보다는 그 일 자체가 남겨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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