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무엇이 확실한가?

강형구 2022. 12. 13. 22:26

   매일 오후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들을 데려오는 나는 때때로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난데없는 놀라움을 느끼곤 한다. 저기 나와 아내에게서 태어나서 부쩍 자란 아이들이 보인다. 과연 내가 무슨 일을 한 것일까? 이 험한 세상에서 아이들이 살아가게 만든 것은 어쩌면 너무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 아니었을까? 나는 오후에 아이들을 보면 오전에 봤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반가워 꼭 끌어안는다. 아빠는 늘 너희 삶의 조연이란다. 너희가 숨 쉬고 빛나는 눈으로 이 세상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희망이고 기적이란다.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함께 보내는 저녁 시간의 행복은 나에게는 너무나 확실하게 여겨져서, 대체 확실한 것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다시 스스로 묻게 된다. ‘1+1=2’가 확실한가? ‘지금 이곳의 온도는 표준적인 온도계에 따라 섭씨 24도’라는 사실이 확실한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나의 아이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와 아내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라는 사실, 이 아이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하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더 확실하게 여겨진다. 확실성? 데카르트처럼 의심하는 나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게 확실한가? 기준계와 무관하게 자연법칙이 같은 수학적 형식을 띠어야 한다는 것이 확실한가? 대체 확실한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최근 텔레비전에서 2022. 10. 29.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 인터뷰를 보았다. 나는 순간 생각했다. 과연 나의 큰 딸아이가 저런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면 과연 내 마음이 어땠을까? 과연 그런 상황에 직면해서 나는 내 남은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너무 끔찍했다. 도저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런 상황에 직면한 내 삶을 결코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유가족이 느낄 그 처절한 고통과 절망은 얼마나 확실하겠는가? 대체 확실한 것이란 무엇인가? 경찰 조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엄중하고 철저하게 밝히는 게 확실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어렴풋이 상상할 수밖에 없는 그 고통,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느낄 것이라 예상되는 그 고통이 확실한 것인가?

 

   나는 매일 나의 논문 원고를 수정하고 있다. 이 작업을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하고 있다. 나는 주식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학위논문을 쓰고 고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확실하게 안다.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의 논문을 쓰는 일은 그 자체로 정말로 힘든 일이다. 그런데 나는 아주 많은 부분에서 표절이 의심되는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은 어떤 유명인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 유명인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평가한 대학이 어떤 대학이었는지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런데 그 일은 마치 없었던 일인 듯 그냥 넘어가고 있다. 나는 이런 상황을 생각하며 일종의 분노를 느낀다. 과연 무엇이 확실한 것일까? 박사학위 논문이 표절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대학 측의 결론이 확실한 것일까? 아니면 이런 상황에 대해 내가 느끼는 분노가 확실한 것일까?

 

   중요한 모든 사안의 판단을 경찰 조사와 법정 판결로 넘기는 것이 확실한 것일까? 과연 그런 과정에서 확실성이라는 것이 남아나기는 할까? 그렇다면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남겨지는 확실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조직적인 권력 앞에서 개인은 한없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는 참담한 현실일까? 과연 인간에게 확실한 것은 무엇인가? 물은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로 구성되었다는 게 확실한가,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게 확실한가?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확실한가, 복잡한 법적 제도적 절차를 거쳐 진행되는 공정하고 엄정한 판단 결과가 확실한가?

 

   대체 무엇이 확실하고 무엇이 중요한가? 인간은 자신이 확실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는 존재이기에, 이 물음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나에게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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