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분수를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강형구 2022. 12. 29. 07:01

   다행스럽게도 나는 최근 박사학위 논문 최종 심사를 통과했다. 너무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나는 이에 대해 전혀 미화하거나 환상을 가질 생각이 없다. 나 스스로 현재의 내 논문 원고가 얼마나 부족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심사를 통과할 수 있는 기준점이 70점이라면 겨우 70점 혹은 71점을 얻어 통과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내가 평소에 열심히 연구하는 모습(적극성)을 보였기 때문에, 이제는 나이가 제법 들어 머리숱도 많이 없어졌기 때문에 겨우 졸업하게 되었다는 느낌도 사실 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부족한 저를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민폐 끼친 것 같아 죄송하고요, 앞으로 정말 열심히 할게요!

 

   분명한 것은 내가 앞으로도 계속 20세기 전반기의 과학 사상사, 그중에서도 논리경험주의의 역사와 철학을 연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분야의 연구는 꼭 필요하다. 당연히 과학학 전공자로서 이 전공 저 전공을 두루 아는 것은 필요하다. 나 또한 과학사 전반, 과학기술학, 한국과학기술사, 과학기술정책 등에 대한 기본 지식을 탄탄하게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나의 세부 전공이 아닌 영역에 관해서는 나의 식견이 깊지 못하기 때문에 대학원 선후배님들의 도움을 빌려야 한다. 실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잘 몰라도 읽고 이해하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내 분수를 안다. 물리학자가 아닌 내가 물리학을 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나는 물리학의 역사와 철학을 연구할 수는 있을지라도 물리학을 할 수 없다. 물리학 속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들의 역사적인 배경과 그 철학적 의미를 서술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물리학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수학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내가 수학사 연구를 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도 매우 어려울 것이라 본다. 수학사 연구는 적어도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한 사람이, 이상적으로는 수학으로 석사 학위 이상을 가진 사람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철학을 전공하고 과학철학을 세부 전공으로 삼은 내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심화 연구의 영역은 매우 제한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나는 내 전공에 관련된 활동만을 해야 할까? 나는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는 꼭 내 세부 전공이 아니더라도 내게 특강이나 대학 학부 강의의 기회가 오면 피하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하면서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이라도 흥미가 생기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 그냥 하겠다고 말한다. 과학학 영역 외부의 사람들은 과학학 내에서도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기술학, 과학기술정책 등으로 세부 전공이 나누어진다는 것을 잘 모른다. 그러니 과학철학 전공자인 나에게 내 세부 전공이 아닌 과학철학의 주제에 대해 혹은 과학사나 과학기술학에 관련된 주제에 관해서 묻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생긴다.

 

   그럴 때 나는 만약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면 직접 하려고 하고, 도저히 나의 역량으로 못할 것 같으면 다른 전공자에게 부탁하려고 한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것을 잘해야 한다. 내가 어떻게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나? 그렇다고 나의 세부 전공에만 매몰되어 있고 싶지는 않다. 사회적 활동을 하면서 좋은 기회가 생기고 그 일을 내가 아닌 다른 연구자가 더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면, 나는 욕심 없이 그 일을 다른 연구자에게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중요한 것은 태도 및 성실함인 것 같다. 겸손하면서 적극적인 태도로 즐겁게 임하되, 내가 도저히 하기 힘들 것 같으면 자존심이나 욕심은 좀 버리고 믿을만한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준다. 그리고 내가 좀 모른다 싶으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본다. 중요한 것은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늘 부지런히 적극적으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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