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예측 가능한 사람

강형구 2022. 12. 2. 11:34

   나는 내가 아주 높은 정도로 예측 가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어떤 사람이 예측 가능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훌륭한 실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예측 가능하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는 커진다.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 중 뛰어남이나 탁월함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없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 평균 이상의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이며 그저 필요한 것은 수고와 노력일 뿐이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주어진 일을 매일 규칙적으로 착실하게 해 나가는 것에 아주 큰 가치를 둔다. 심지어 그런 착실함과 성실함이 탁월함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라고까지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가치 판단의 문제라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나의 관심은 기본적으로 철학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내가 매일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의 정체가 궁금해서 상대성 이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평균적이고 평범한 인간인 내게도 시간과 공간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그것의 정체나 특성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지, 어떤 구체적이고 복잡하고 전문적인 이유 때문에 이 이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생명체이고 인지적인 개체인 한 인간의 관점에서 시간과 공간을 생각한다. 바로 그와 같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시간과 공간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들여다본다. 역설적으로 나는 이와 같은 평범하며 보편적인 관점에 입각해서 생각하면 할수록 현대의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시간과 공간 개념이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유사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과학적 지식이 어떤 의미에서 타당하며 합리적인지를 철학적으로 해명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과학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자가 과도한 형이상학적 주장을 하는 것을 막는다. 인간의 추상적 표상 능력에 의해 생성된 개념적 구조물을 실제의 세계 구조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원자의 실재성을 반박하고자 한 관점과 유사하다고 생각될지 모른다. 오늘날 이 관점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나는 이러한 ‘부정적’ 평가 또한 일종의 ‘시대적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의 개념적 구조가 어떻게 인간의 경험과 관계 맺으며 의미를 갖는지를 따져 묻는 것은 과학적 지식의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경험을 존중하는 합리적인 태도라고 믿는다.

 

   이런 비유를 들며 생각할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생각해보라. 플라톤이 이성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이데아의 세계를 이야기했지만, 이에 반해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질료와 형상의 세계를 이야기했다. 20세기 전반기에 혁신적인 물리학의 발전(상대성 이론, 양자역학)이 일어난 이후, 이론 물리학자들은 플라톤의 관점과 비슷한 관점을 취했지만 논리경험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과 비슷한 관점을 취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상을 긍정하면서도 경험을 중시한 것처럼, 논리경험주의 역시 과학적 지식 속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추론 장치의 중요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경험을 더 강조했다고 믿는다.

 

   아인슈타인은 마흐의 독립성과 지칠 줄 모르는 비판적 경향을 칭송하면서도 이러한 비판적 입장으로부터는 새로운 것이 창조되기 어렵다고 불평했다.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불평을 아인슈타인은 옳았고 마흐는 틀렸다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시대와 사람에 따라 맡은 바의 역할이 다르다고 보는 게 더 좋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마흐의 성찰로부터 큰 영감을 받은 것처럼, 철학적 관점에서의 과학 비판과 성찰은 과학을 인간의 경험과 화해시키면서도 또 다른 새로운 과학적 관점을 탄생시키기 위한 중요한 원천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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