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407

할아버지 할머니 묘비 기록

진주강공휘신광(晋州姜公諱信筐), 배성주이씨순호(配星州李氏順好) 지묘(之墓) 선고(先考)의 휘(諱)는 신광(信筐)이시고 자(字)는 형애(亨受)이시며 호(號)는 명제(明齊)이시다. 1921년 신유(辛酉) 3월 7일 이곳 마수동(馬水洞)에서 조고(祖考) 휘 무희(武熙)의 1남 2녀 중 독자로 탄생하시어 무후(無后)인 당숙 휘 문희 후로 출계(出系)하시고 차남인 병석을 생부의 사손(嗣孫)으로 승계함으로써 양가계의 절손을 방지하였으며 양가계의 묘소 관리 제례 등 제반절차를 차질 없이 시행케 하신 어른이시다. 왜정치하에서 가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셨으며 8. 15. 광복 후 새마을 지도자 및 동장을 수차례 역임하셨고 가천 새마을 광역권 사업추진위원장을 역임하시면서 창천에서 마수에 이르는 도로개설에 기여한 공로로 성주..

일상 이야기 2021.02.21

기록으로 남기는 일

이번 음력 설날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큰 딸 지윤이만 데리고 부모님이 계신 부산에 다녀왔다. 부산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라 내려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아주 오랫동안 살았던 집은 이제 없어졌고, 대신 그 자리에는 새로운 아파트 단지 조성을 위한 공사를 한창 하고 있다. 부모님은 새로운 아파트가 지어질 때까지 근처에 있는 다른 낡은 아파트에 전세를 들어 지내고 계신다. 올해 나는 40세가 되었고, 아버지께서는 69세, 어머니께서는 66세가 되셨다. 아버지, 어머니, 지윤이와 함께 설 차례를 지냈다. 차례 상에 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셨으니, 나에게는 고조할아버지와 고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께 새해를..

일상 이야기 2021.02.14

글쓰기 연습

나는 말하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을 더 즐긴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에 말하는 것은 글 쓰는 것보다 더 빠른 두뇌 회전 및 순발력을 요구한다. 나의 경우 아마도 머리가 천천히 돌아가고 순발력이 부족해서 말보다는 글이 더 편한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말에 비해 글이 갖는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글쓰기를 통해서 생각을 길게 전개해 나갈 수 있다. 또한 글쓰기는 다듬을 수 있는 맛이 있다. 말은 한 번 해버리면 되돌릴 수 없지만, 글은 목적하는 대상에게 공개하기 전까지는 쓰고 나서도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 돌을 다듬어서 조각을 만드는 것에 비유하면 약간 과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글쓰기는 말하기와 달리 작품 활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 간혹 예술적으로 말을 잘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일상 이야기 2021.02.01

마흔이 되었다

나는 1982년에 태어났다. 내 나이 올해 마흔이다. 나는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과학 교과서나 과학 문제집보다는 과학 이야기책들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대학과 대학원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했다. 나는 20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논리경험주의자들의 저술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과학철학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셈이다. 아직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고,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에도 논리경험주의자들이 쓴 글들을 번역하여 연구할 생각이다. 내가 중점을 두고 연구하고 있는 학자는 한스 라이헨바흐다.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나 아닌 누군가가 라이헨바흐가 아닌 모리츠 슐리크, 에른스트 카시러, 루돌프 카르납과 같은 학자들에 대해서도 연구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목표한 일들을 겨우겨우, 천천히, 하..

일상 이야기 2021.01.01

카페의 단골손님

나는 어지간한 음식은 다 잘 먹는다. 식성이 까다롭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가끔씩 어떤 음식이 몹시 먹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경우도 거의 없다. 차나 술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나는 드립 커피도 괜찮고 일회용 커피도 괜찮다. 또한 나는 저렴한 와인이든 고급 와인이든 상관없고 그냥 있는 대로 마신다. 비슷한 논리가 옷이나 신발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몸에 맞고 너무 이상하지만 않으면 입고 다니고, 발 크기에 맞으면 그냥 신고 다닌다. 나도 내가 왜 이런 사람인지 모르겠다. 그저 이런 나를 이해해 주는 아내에게 감사할 뿐이다. 주중에 회사 나갈 때는 돈 쓸 일이 거의 없다. 점심값 4천원을 빼고는 대부분 돈을 쓰지 않는다. 차의 경우 회사에 구비되어 있는 1회용 커피나 녹차를 마시면 된다. 딱히 하는 운동..

일상 이야기 2020.12.20

2020년을 정리하며

막내 아들이 새벽 3시쯤 깨서 우유를 먹이고 안고 다독이며 재웠다. 아들이 잠이 든 후 아들 대신 내가 잠에서 깨어 이처럼 고요한 새벽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간에 딱히 할 만한 일이 생각나지 않고 이제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이라, 올 한 해에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정리해본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정치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런데 그런 나조차도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내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할 수밖에 없음을 실감한다. 나는 정부가 여러 측면에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대처는 여전히 잘 하고 있고, 최근 1~2주 간에 감염 확진자가 다소 많아졌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 상황을 잘 견뎌 내리라 본다. 중요한 법안들을 처..

일상 이야기 2020.12.16

학문에의 헌신이라는 이념

나는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학위와 석사 학위를 받고 현재 박사 학위 논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천편일률적인 것은 아니다. 선천적으로 머리가 비범하게 뛰어난 친구들이 있다. 또한, 이들만큼 뛰어난 지능을 갖고 있지는 않아도 제법 좋은 머리에 어린 시절부터 아주 좋은 교육을 받아 우수함을 유지한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두 부류 모두에 속하지 않았다. 나를 특성화시키는 두 단어는 ‘순진함’과 ‘고집’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자연을 단일하고 일관되게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수학과 물리학의 아름다움에 빠졌다. 그 아름다움을 순진하게 믿은 것이다. 또한 나는 수학과 물리학의 의미를 나 스스로 철저하게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다. 나 스스로 제대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

일상 이야기 2020.11.30

다만 느리게 걸을 뿐

나는 나의 능력에 걸맞지 않은 욕망을 가졌다. 나는 학생시절 고려대학교 김종오 교수가 번역한 [상대성 이론]과 한상훈씨가 번역한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지동섭씨가 번역한 [물리 이야기]를 읽으며 아인슈타인에게 매료되었다. 임경순 교수가 편역한 [100년만에 다시 찾는 아인슈타인]에 수록된 아인슈타인의 지적인 자서전을 읽은 것도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특히 아인슈타인의 글 속에 통합되어 있는 물리학적이고 철학적 통찰이 학생이던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수학적이고 물리학적인 능력이, 수학적 물리학적 철학적 고찰을 하고자 하는 나의 욕망에 비해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학창 시절 나의 주변에는 비범한 지적 능력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고, 나는 그 친구들에 비하면 지..

일상 이야기 2020.10.25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일

“너는 너의 현실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너의 환상 속에 살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그랬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마치 내가 신성한 종교의 탐구자이자 사도라도 되는 양 매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 나는 세상에서 중요한 존재가 전혀 아니었지만(지금도 그렇다), 나는 내가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 아는 신비로운 비밀의 숲 속을 탐험하고 있다는 상상에 빠졌다. 비록 우연에 의해서였지만 나는 스스로 과학과 철학이라는 비밀의 숲을 발견했고, 이 숲 속에서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책 속에 쓰인 철학적 언어가 안겨주는 심오함과 깊이는 나를 현혹시키고 만족스럽게 했다. 나를 매료시킨 이 거대한 환상은 그 시절의 나를 붙잡고 내 삶을 이끌었다. 돌이켜보면 지극히..

일상 이야기 2020.09.26

과학관의 학예사?

작년에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주관하는 학예사 직무교육에 참석한 바 있다. 올해 나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주관하는 학예 전문인력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온라인으로 교육을 진행 중이다. 교육을 통해 민속박물관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재미있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예 분야의 업무에 관한 한, 비록 과학관에서 3년 이상 근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초보다. 사실 과학관에서 학예업무를 배우고 익히기가 쉽지는 않다. 과학기술자료를 모으고, 관리하고, 조사하고, 연구하고, 전시하는 일이 아직까지 중앙과학관을 제외한 다른 국립과학관에서는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왜 과학관이 학예업무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물론 ..

일상 이야기 2020.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