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글쓰기 연습

강형구 2021. 2. 1. 23:00

   나는 말하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을 더 즐긴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에 말하는 것은 글 쓰는 것보다 더 빠른 두뇌 회전 및 순발력을 요구한다. 나의 경우 아마도 머리가 천천히 돌아가고 순발력이 부족해서 말보다는 글이 더 편한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말에 비해 글이 갖는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글쓰기를 통해서 생각을 길게 전개해 나갈 수 있다. 또한 글쓰기는 다듬을 수 있는 맛이 있다. 말은 한 번 해버리면 되돌릴 수 없지만, 글은 목적하는 대상에게 공개하기 전까지는 쓰고 나서도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 돌을 다듬어서 조각을 만드는 것에 비유하면 약간 과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글쓰기는 말하기와 달리 작품 활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

 

   간혹 예술적으로 말을 잘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예술적 말하기는 말하는 사람의 자유가 상당히 보장되어야 가능한 것 같다. 시를 낭독하거나, 연설문을 발표하는 등 특별한 배경이 조성되어야 예술적으로 말하기가 수월하다.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혹은 나에게 적대적인 태도와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예술적 말하기를 실천하는 것은 힘들 것이다. 만약 그와 같은 악조건 속에서 예술적 말하기가 가능하다면, 그리고 그와 같은 말하기를 현장에서 직접 듣는다면, 이를 통해 얻는 감동은 단순히 글을 쓰거나 읽음으로써 얻는 감동보다 더 클 것이다. 실제로 현실 생활 속에서 우리가 듣는 대부분의 말들은 정보를 탐색하거나, 타인을 공격하거나, 자신을 방어하거나, 예의상 혹은 정황상 필요한 말들이다. 기존 질서를 재생산하는 말들이 지배적이다.

 

   나의 글쓰기 연습은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사회 과목 시험을 논술 형식으로 보았는데 나는 그게 나름 재미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매일 일기를 쓰라고 시켰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었고 별 쓸 말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일기장에 엉망진창인 시를 쓰거나 말도 안 되는 썰렁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들을 지어 내어 썼다. 또한 중학교 때는 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개미]와 파트뤼크 쥐스킨트라는 독일 작가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소설 비슷한 것을 써서 학교 교지에 낸 적도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신문 만드는 동아리에 가입해서 글을 썼다. 지금 생각하면 온 몸이 오그라들 정도로 유치한 글들이었다.

 

   대학 시절에는 전공이 철학이었던 까닭에 수업 때 항상 보고서를 써서 제출했다. 글재주가 좋진 않았지만 베껴서 보고서를 제출한 적은 없었다. 군대에서는 사관후보생 시절에 후보생들에게 수양록을 쓰라고 해서 매일 꼬박꼬박 글을 썼고, 장교 생활을 할 때도 하루하루를 정리하는 글들을 자주 썼다. 이때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좋은 참고가 되었다. 대학원에서도 주로 했던 일이 글 읽기, 글 요약하기, 글 쓰기였다. 그렇게 나는 학생이던 시절부터 글쓰기와 친숙했고 이 일을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글쓰기는 학위논문 쓰기다. 아마도 나의 학위논문 주제에 관한 나의 읽기는 이제 충분할 것이다. 읽으려면 더 읽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지금까지 읽어서 소화한 것을 써내려 가야하는 시점이 된 것 같다. 물론 이 주제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긴 글쓰기를 통해 내가 얼마나 알고 있고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를 분명하게 쓰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시간 날 때마다 습관처럼 나의 이야기를 그냥 쓴다. 문헌기록을 찾아서 확인하는 것은 일단 뒤로 미뤄 놓고, 지금까지 내가 해 온 노력들이 하얀색의 한글 파일 위에서 어떤 문장으로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바라보는 것이다. 글쓰기 과정을 통해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가 조금씩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나는 나를 쓰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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