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기록으로 남기는 일

강형구 2021. 2. 14. 16:56

   이번 음력 설날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큰 딸 지윤이만 데리고 부모님이 계신 부산에 다녀왔다. 부산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라 내려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아주 오랫동안 살았던 집은 이제 없어졌고, 대신 그 자리에는 새로운 아파트 단지 조성을 위한 공사를 한창 하고 있다. 부모님은 새로운 아파트가 지어질 때까지 근처에 있는 다른 낡은 아파트에 전세를 들어 지내고 계신다.

 

    올해 나는 40세가 되었고, 아버지께서는 69세, 어머니께서는 66세가 되셨다. 아버지, 어머니, 지윤이와 함께 설 차례를 지냈다. 차례 상에 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셨으니, 나에게는 고조할아버지와 고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께 새해를 기념하여 인사를 드린 셈이다. 우리 집에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제사를 지내지 않고 큰아버지 댁에서 지낸다. 할아버지께서는 강씨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양자가 되어 큰집으로 적을 옮기셨고, 자연히 원래의 가계는 나의 아버지께서 잇게 되었다.

 

    차례를 지내며 나는 고조할아버지와 고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에 대해 내가 거의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직접 뵈었기 때문에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어떻게 사셨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큰아버지께서 할아버지의 묘비에 할아버지의 이력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글을 써 놓으셨고, 나는 그 글을 통해 할아버지의 삶에 대해 대략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비해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훨씬 더 자세하고 풍부한 정보를 갖고 있다. 나는 아버지께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어떻게 지내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고등학교 때 대구 시내의 큰아버지 댁에서 하숙하며 지내셨던 이야기나, 고등학교 졸업 후 시골에 돌아왔다가 다시 부산으로 나가셨던 이야기 등을 알고 있다. 또한 내가 태어난 이후의 아버지의 삶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기억을 갖고 있다. 어머니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아버지께서 자라셨던 경북 성주, 어머니께서 자라셨던 경남 합천에는 직접 자주 가 보았으므로 생생하고 자세한 기억을 갖고 있다.

 

    하지만 딸 지윤이는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모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내가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처럼, 훗날 지윤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어떤 분들이었는지를 궁금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처럼 우리나라의 훌륭한 위인들에 대해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나를 낳아 기른 아버지와 어머니, 나의 아버지를 낳아 기른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요즘은 인쇄 기술이 발달하고 제작 비용도 저렴해진 까닭에, 마음만 먹으면 약간의 돈만 들여도 제법 근사한 책을 만들 수 있다. 판매를 통한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그 기억을 가족들에게 남기기 위해 책을 만드는 것이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준비와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셨던 시대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가 필요하고, 내가 부모님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추려내어 질문지도 만들어 보아야 한다. 인터뷰를 한 다음에는 그 결과를 나름대로 질서를 잡아 정리를 해야 한다. 나에게 비친 나의 부모님을 한 권의 작은 책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마도 이 작업은 내가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극히 평범하신 분들이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분들이다. 나 역시 평범한 사람이기는 마찬가지지만 나의 아내, 나의 아이들에게 나는 나름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 아닌가. 이제 나는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더 잘 알고 더 잘 기억에 간직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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