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과학관의 학예사?

강형구 2020. 8. 26. 23:38

   작년에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주관하는 학예사 직무교육에 참석한 바 있다. 올해 나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주관하는 학예 전문인력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온라인으로 교육을 진행 중이다. 교육을 통해 민속박물관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재미있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예 분야의 업무에 관한 한, 비록 과학관에서 3년 이상 근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초보다.

 

    사실 과학관에서 학예업무를 배우고 익히기가 쉽지는 않다. 과학기술자료를 모으고, 관리하고, 조사하고, 연구하고, 전시하는 일이 아직까지 중앙과학관을 제외한 다른 국립과학관에서는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왜 과학관이 학예업무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물론 나는 사람마다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과학관 육성법에 과학관의 임무가 “과학기술자료를 수집, 조사, 연구, 보존, 전시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에, 이 일은 과학관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과학관이 이 일을 하지 않으려면 과학관 육성법을 바꾸면 된다.

 

    게다가 나는 과학관에서 학예 업무를 하기 위해서 채용된 사람이다. 나는 과학기술자료를 모으고 조사 연구해서 보존하고 전시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뽑혔다. 그래서 나는 입사한 2017년부터 매년 기증품 특별전을 해 왔고, 올해도 가을을 목표로 기증품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내가 학예 업무를 ‘잘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 업무를 일관되게 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환경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담당자가 나 한 명밖에 없다) 전시할 때마다 기증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전시 도록도 빼먹지 않고 만들고 있다. 물론 역사와 전통이 깊은 박물관의 특별전에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다.

 

    물론 내가 과학관 내에서 명시적으로는 학예 업무 이외의 다른 업무를 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설혹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가 학예사라는 정체성을 그대로 갖고 있을 것이고 이와 관련된 업무를 할 것이다. 학예사란 기본적으로 특정한 부류의 자료들(나의 경우에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관한 자료들에 관심이 있다)에 관심을 가지고, 그 자료들을 조사하고 수집하여 연구하고, 더 나아가 이를 전시하고자 하는 사람을 말한다. 전시 운영을 하거나 교육 연구를 하더라도 학예와 관련된 활동을 계속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시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혹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그 속에 학예 연구의 내용을 녹일 수 있을 것이다.

 

    과학관 내부에서 학예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면 업무에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학예 업무를 잘 해야 하는데, 아직 한참 멀었다. 진짜 학예 업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소장품 하나를 끝까지 파고들어 그 소장품에 관한 세부적인 이야기들을 속속들이 알아 이를 의미 있게 표현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관 학예사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우리나라의 뛰어난 미분기하학자가 남긴 자료를 연구한다고 해보자. 내가 수학자가 아닌 이상 그가 쓴 논문을 어떻게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론 물리학자는 어떤가? 고도로 전문적인 이론 물리학 논문들을 내가 어떻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박물관에서의 학예 업무는 계속된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과학박물관이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 못한다면 나보다 잘하는 다른 누군가가 할 것이고, 나 혼자서 하지 못한다면 나와 더불어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할 것이다. 이 일을 하기 싫다면 법을 바꾸어야 한다. 법이 바뀌지 않는 한 과학박물관에서 과학기술자료를 수집, 조사, 연구, 보존, 전시하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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