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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라는 꿈 속에서

[의식이라는 꿈]이라는 책을 알게 된 것은 올해 6월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근무하는 한 연구사님과의 대화를 통해서였다. 다니얼 데닛이 쓴 이 책을 내가 평소에 알고 지내던 박사님께서 번역하셨다는 사실 또한 그때 알았다. 이후 나는 이 책을 사거나 빌려 읽지는 않았지만, 책의 제목 “의식이라는 꿈”은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주체의 입장에서 의식은 아름다운 하나의 꿈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게 여겨졌다. 이 표현이 주체의 나르시시즘을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마 이런 나르시시즘이 없다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 We are always in our sweet dream. Its name is “consciousness”. 의식은 꿈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게끔 만들어 주는..

그저 내 할 일을 할 뿐

아이들 셋을 키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부모님, 장모님의 도움을 받아 그럭저럭 해 나가고 있다. 아이들이 무사히 자라줘서 감사하다.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 사는 것 같다.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는 주된 동기도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서 비롯되고 있다. 나는 올해로 만 10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내가 맡은 일을 부지런히 한다. 최근 회사에 어수선한 일이 있긴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그저 나의 일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나는 나의 모든 삶을 회사의 일로 채우려고 하지는 않는다. 회사에서는 일을 열심히 하고, 퇴근하면 회사의 일은 잊고 다른 것들로 나를 채운다. 이제는 정말 박사과정 졸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퇴근하면 육아를 ..

일상 이야기 2021.08.15

역사의 아이러니

내가 번역한 리처드 뮬러의 책 [나우 : 시간의 물리학]의 첫 부분에서 뮬러는 '지금'에 대한 아인슈타인과 카르납 사이의 입장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인슈타인은 인간에게 '지금'이 갖는 독특한 의미를 물리학이 포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다소 괴로워한 반면, 카르납이 보기에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물리학적 언어에서 말하는 '지금'의 의미가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이며, 아인슈타인이 생각하는 그와 같은 독특한 의미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뮬러는 아인슈타인에게 다소의 공감을 표시하고, 카르납에 대해서는 비교적 강하게 반대하면서, 물리학이 포착하지 못하는 '지금'의 의미가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뮬러에 따르면 시간은 실재하고,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고 있으며, 과거는 결정되어 있는 반면 미래..

아마추어의 즐거움

과학관에서 내가 하는 일의 즐거움은 가령 이런 것이다. 나는 업무 과정에서 우연히 오명 전 부총리님을 알게 되었고, 부총리님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부총리님이 쓰신 책들과 관련 자료들을 받아 읽었다. 1940년에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교수와 연구원으로 활동하다, 우연한 계기로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된 후 체신부 차관과 장관을 하며 1980년대 우리나라 전자정보통신 산업을 약진하게 만든 중요한 한 명의 인물을 알게 된 것이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님을 알게 된 것도 흥미롭다. 1944년에 태어나 어렸을 때 큰아버지로부터 한학을 공부했고,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 삼성에 입사하여 새로운 사업으로 전자산업을 제안했다. 이후..

과학관 이야기 2021.08.04

마흔이나 되었는데

요즘 부쩍 자주 하는 생각은 ‘전문성’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초, 중, 고등학교에서의 공부가 크게 전문성을 요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머리가 똑똑하거나, 아주 노력을 많이 하면 고등학교까지의 공부를 잘 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공부 역시 그다지 쉬운 것은 아니긴 하다. 대학 이후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학에서 평균적으로 높은 학점을 얻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대학 시절부터 집중적으로 자신의 전문성을 길러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사회 속에서 실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면 그게 어떤 분야라도 상관없다. 심지어(!) 과학철학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라이헨바흐의 철학을 계속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과학철학 연구 성과가 학술지에도 게재되지 않는가. 이 분야에 대..

과학관 이야기 2021.07.30

일, 육아, 논문작성

이번에 발행될 [과학철학]지에 나의 논문이 게재되기로 결정되었다. 제목은 “상대성 이론에 대한 슐리크, 카시러의 철학적 분석 비교 연구”이다. 초고에는 카르납의 박사학위 논문 [공간]에 대한 논의도 들어 있었는데, 수정 과정에서 이 논의를 완전히 삭제했다. 대신 최근에 집중적으로 카르납이 1926년 이전까지 썼던 물리철학 논문들을 읽고 있다. 카르납의 초기 물리철학에 대한 별도의 논문을 쓰는 것이 필요하고, 이때 카르납과 라이헨바흐를 비교할 것이다. 슐리크, 라이헨바흐, 카르납과 같은 학자들이 활동할 당시에는 “과학철학”이라는 전문적인 분과 학문이 성립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철학”이라는 학문의 위상은 비교적 높았고, 과학자들과 일반인들 모두로부터 상당한 존경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상 이야기 2021.07.18

논문을 수정하며

최근에 [과학철학]에 논문 한 편을 투고하고, 같은 내용으로 2021년 과학철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도 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많이 부족하고 어설픈 내용의 논문이라 이번에는 게재가 되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저 논문 투고를 통해 다른 철학 박사님들의 의견들을 수렴하고 싶다는 생각에 투고한 것이었다. 7월 초에 논문 심사 결과가 나왔는데, 결과는 ‘조건부 게재’였다. 나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세 분의 심사위원께서 심사를 해 주셨고, 심사위원들 모두 나에게 소중한 조언들을 남겨 주셨다. 이후 나는 논문 원고 초고를 상당 부분 수정해야 했다. 논문의 주장을 전체적으로 고쳤을 뿐만 아니라, 논문 초고의 한 장 전체를 삭제하고 새로운 장을 처음부터 새로 썼다. 논문 수정을 위해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의 “..

월간 [뉴턴]을 정리하며

얼마 전(한 달 전쯤)에 경북대학교 생물학과에 재직 중이신 한 교수님께서 대구과학관에 월간으로 발행되는 과학 잡지 [뉴턴]을 기증해주셨다. 잡지 [뉴턴]은 1985년 5월부터 발간을 시작했는데, 1985년 4월에 발간된 시험판부터 시작해 2016년 1월까지 발간된 잡지 모두를 과학관에 기증해주셨다. 그 분량이 상당했다. 잡지들을 과학관 수장고로 운반한 뒤 한동안은 이 잡지들을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며칠 전부터 업무에 약간 여유가 생기기 시작해서 오늘 오전부터 본격적으로 정리 작업을 시작했다. [뉴턴]을 정리하며 확실하게 확인한 게 있다. 아인슈타인과 상대성 이론은 1년에 최소 1회 이상 잡지 [뉴턴]의 특집 주제로 실렸다. 아인슈타인이 등장하지 않는 해가 없었다. 아인슈타인이 참으로 많은 사람들..

독학하는 사람

요즘은 직장에서 일하느라, 집에서 애들 보느라, 박사학위 논문 작성하느라 도서관에 가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나라는 사람을 키운 것은 매일 도서관에서 죽치고 앉아 책을 읽던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때 그랬고 대학 때 그랬다. 아침 일찍 도서관에 나가서 책을 한 권 골라 계속 읽다가, 피곤하면 밖으로 나가서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몸 좀 푼 다음,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가서 읽던 책을 계속 읽었다. 도서관 식당에서 먹는 밥은 가격도 쌌다. 저녁때까지 책을 읽고 집으로 돌아가면 왠지 모를 성취감이 느껴졌다. 물론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나는 수업에 관련된 책을 읽지는 않았다. 그냥 읽고 싶은 책을 읽었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나름대로 착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회가 내게 요구하는 것들을..

일상 이야기 2021.06.29

회전, 돈다는 것

회전(回轉, spin). 어떤 물체가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 물체는 자신이 아닌 다른 물체 주변을 돌 수도 있고, 그 자신을 하나의 축으로 삼아 돌 수도 있다. 그런데 물체는 왜 도는 것일까? 물체가 도는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한 물체는 다른 물체 주변을 다양한 방식으로 돌 수 있다. 다른 물체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일정한 빠르기로 돌면, 그 물체의 궤적은 동그란 원이 된다. 그런데 대체 왜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일정한 빠르기로 돈단 말인가? 물체에 그렇게 돌고자 하는 본성이 있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일상적인 비유를 들자면, 내가 튼튼하고 가는 줄로 다른 물체를 매달고 힘을 써서 돌리는 것처럼, 두 물체 사이에는 일종의 힘이 작용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