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경험주의 과학철학(2/3)

강형구 2024. 4. 6. 06:45

   모든 시대의 철학자들에게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은 일종의 ‘해석 대상’이다. 20세기의 경험주의자 라이헨바흐는 ‘사변철학’ 대 ‘경험주의 철학’이라는 대립 구도를 설정하여 그리스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전개하지만, 나는 상황을 그와는 약간 다르게 바라본다. 인간이 언어를 만든 후 인간 공동체가 언어가 만들어 내는 서사적 세계 속에서 살게 되면서, 그러한 서사적 세계가 인간 조직을 통치하는 정치권력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신화적 세계관’이 등장했다. 초기에는 과학기술 문명의 의미마저 이 신화적 세계관 속 일부에 지나지 않았는데, 변방에 있던 그리스인들은 과학기술 문명이 갖는 의미에 대해 동방과는 ‘다르고’ ‘독특하게’ 해석했고, 바로 그 점에서 역사 속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만들었다.

 

   그리스인들의 공헌은 두 가지이다. 첫째, 언어적 서사 속에서 논리의 정합성을 우선시했다. 사실 신화적 세계관에서는 논리의 정합성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강력한 권력이 진술하는바 그 자체가 일종의 진리로서 강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로 상업으로 생계를 잇고 대화와 토론을 즐겨하던 그리스인들은 상호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말싸움(논쟁)을 벌였는데, 이 논쟁의 승패를 판가름내기 위한 비교적 공정한 기준이 바로 논리의 정합성이었다. 둘째, 언어적 서사를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떼어 냄으로써, 세계를 기술하고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언어적 서사의 ‘다양성’을 가능하게 했다. 이것을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변이’의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 지점에서 다음과 같은 두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첫째, 오직 그리스인들만이 할 수 있었나? 둘째, 이러한 그리스만의 독특한 공헌이 꼭 필요했나? 첫째 물음에 대해, 나는 그리스에서 이런 형태의 문명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도 지구상의 다른 지역에서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본다. 둘째 물음에 대해, 인류 문명의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적 공헌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판단한다. 이미 신화적 세계관의 시대에 이르면 지구 위에 인간이라는 종을 대적할 만한 다른 생물 종이 없다. 인간은 인간끼리 치열한 전쟁을 할 뿐, 인간이 아닌 다른 부류의 생명체는 인간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리스적 사고방식은 인간 발전 속 필연적인 단계가 아니다.

 

   그리스가 서양 철학과 과학의 발상지라는 서술은 그 자체가 일종의 신화이다. 그러나 그리스적 사고방식이 이후의 서양 과학기술 발전에 두고두고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인간 공동체는 그 유지 및 결속을 위해 세계와 자연에 대한 서사적 체계를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그러한 서사적 체계에 논리적 정합성, 다양성, 자유를 불어 넣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어떤 서사적 체계이든 그것은 인간 종이 세계(자연)에 관해 만들어 낸 거대한 환상이지만, 그러한 환상 없이는 자연과의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의 차원에서도, 집단의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탈레스로부터 시작하여 플라톤 이전까지는 그리스라는 지역에서 새로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사고가 조금씩 무르익은 시기였다. 수학 특히 기하학의 정리들에 ‘논리적 증명’을 부여한 것은 그리스의 중요한 공헌이었다. 이는 오직 경험적 성공만이 아니라 서사적 체계, 언어적 진술들의 체계 ‘내적인’ 논리적 정합성을 추구한 결과이다. 또한 그리스인들은 세계를 서술하는 ‘관점의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그리스인들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다양한 담론을 과감하게 전개했고, 오늘날까지도 여러 그리스인의 세계관이 우리에게 전해진다. 이와 같은 발전을 배경으로 특정 시점에서 플라톤(Plato)이 등장하는데, 플라톤의 등장은 서양 철학과 과학에서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