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서 경험주의와 이성주의를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대표한다면, 근대 이후 경험주의와 이성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는 영국의 흄과 독일의 칸트이다. 흄과 칸트가 등장한 맥락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등장했던 맥락과는 사뭇 달랐다. 두 사람은 뉴턴 역학의 눈부신 성공이라는 배경 속에서 등장했으며, 뉴턴 역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흄은 뉴턴 역학의 ‘방법론’을 인식론에 도입하고자 했다. 뉴턴은 자신의 이론을 데카르트의 이론과 대조하며 “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라고 했다. 뉴턴에 따르면, 그는 케플러의 3가지 행성 법칙을 일종의 ‘현상적 법칙’으로 수용한 후, 귀납의 절차를 통해 이러한 현상적 법칙들을 더 높은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는 일반 법칙을 추론했다. 이때 그는 현상적 법칙을 일종의 기계론적 가설을 통해 인위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았으며, 경험을 통해 파악되는 현상적 법칙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들을 수학적으로(정량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흄이 볼 때, 태양과 그 주변을 움직이는 행성들에 관한 경험적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한 후 이 현상들과 관련한 보편 법칙을 귀납적으로 추론한 것이 뉴턴이 한 일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흄은 인간의 마음과 관련된 여러 경험적 현상들을 우선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기술한 후 이들과 관련한 보편 법칙을 귀납적으로 추론하고자 했다. 이러한 귀납적 추론과 인간이 갖는 개념들에 대한 반성적 분석을 통해, 흄은 우리가 인과성과 귀납의 개념을 습관적으로 추론할 뿐이며 이 개념들에 일종의 필연성을 부여할 수는 없음을 보였다.
칸트는 뉴턴 역학의 철학적 의의를 흄과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칸트는 뉴턴 역학이 유클리드 기하학을 물리적 세계 기술의 전제로 삼은 후, 운동의 3가지 법칙과 보편중력 법칙을 전제로 천상과 지상의 온갖 물리적 현상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성공적으로 예측하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칸트는 뉴턴 역학을 일종의 ‘선험적 종합 지식’으로 보았다. 뉴턴 역학의 지식은 유클리드 기하학과 운동 법칙 및 중력 법칙으로부터 연역적으로 추론되므로 전제가 되는 공리들을 제외하면 별도의 정당화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선험적’이다. 그러나 뉴턴 역학적 지식은 공리들에서는 찾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하기에 ‘종합적’이기도 하다.
칸트는 이성주의를 구제하기 위해 이성주의를 플라톤이 제시한 것으로부터 결정적인 방식으로 변환시켰다. 플라톤이 제시한 것과 같이 물리적 세계와 구분되는 별도의 ‘이데아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식은 인간의 ‘인식 형식’이라는 일종의 틀을 통해 특정한 방식으로 ‘정제’된다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세계를 인식 형식을 통해 정제하여 받아들이며, 시간과 공간, 인과성, 귀납은 세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 형식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인식 형식과 관련된 요소들은 세계에 관한 인간의 모든 지식에 ‘전제’되며 이들을 반박할 수 없다.
뉴턴 역학에 대한 흄과 칸트의 해석은 당대의 성공적인 자연과학적 지식에 관해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는 철학적 관점이었다. 예를 들어 인간의 감각 경험에 기초한 흄의 시간과 공간 개념 분석은, 시간과 공간에 절대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를 부여했던 뉴턴의 해석과 상반되는 것이었다. 칸트는 시간과 공간에 뉴턴과 같이 절대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시간과 공간을 인간의 인식 형식이라 봄으로써 이성주의의 전통을 좀 더 설득력 있게 유지할 수 있었다.
17세기 이후 전자기학의 발전을 통해 질점과 힘의 물리학이 아닌 장(場, 마당)의 물리학이 발전했고, 19세기 말이 되면 장의 물리학은 상당한 발전을 이루어 기존의 역학적 세계상을 위협하는 상황이 된다. 상대성 이론, 양자 이론이라는 자연과학적 혁신이 이루어진 20세기 전반에 다시 한번 동시대의 자연과학적 지식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한 철학적 해석이 필요해졌다. 논리경험주의자 한스 라이헨바흐는 바로 이와 같은 배경 맥락 속에서 20세기의 자연과학 지식에 맞는 새로운 경험주의적 해석을 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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