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한스 라이헨바흐와 20세기 경험주의 과학철학(2)

강형구 2024. 1. 12. 13:22

   이번 주 주말(1월 14일)까지 출판사에 책의 제목과 목차를 보내야 하므로, 이번 글은 그와 같은 실용적인 목표에 초점을 맞춰 쓰려고 한다. 책 제목은 “한스 라이헨바흐와 20세기 경험주의 과학철학”이다. 그러면 이 책의 핵심 키워드 10개는 무엇으로 선정해야 할까?

 

   ① 20세기 이전의 과학철학 – 경험주의(흄)와 이성주의(칸트) ② 상대성 이론과 시간 및 공간의 문제 ③ 통계 물리학과 확률 개념의 문제 ④ 양자역학과 과학언어의 논리 문제 ⑤ 상대화된 선험 : 구성인가 규약인가? ⑥ 과학적 지식 속 규약과 경험의 역할 ⑦ 과학적 지식의 변화와 정당화 ⑧ 과학철학자와 과학자의 관계 : 라이헨바흐-아인슈타인 사례 ⑨ 20세기 경험주의 과학철학에 대한 비판들 ⑩ 21세기 : 경험주의 과학철학의 부활?

 

   대략 이상과 같은 핵심 키워드 10개를 정했다. 물론 앞으로 책을 집필해 나가면서 조금씩 수정될 것이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이 시작되면 탄력이 붙어서 조금씩이라도 계속 진전하게 된다. 이렇게 대략적으로라도 정하니까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써 놓고 보니까 책 내용을 가지고 대학에서의 철학과 전공 강의 또는 대학원 전공 강의를 개설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하, 좋다! 강의를 개설하게 되면 책 집필이 조금 더 편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매주 강의를 준비하면서 원고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또한 본론과는 관계가 별로 없는 여담이었다.

 

   내가 생각할 때 현대 과학철학에 대한 환상과 압박의 근원은 20세기 수학 및 물리학지식의 눈부신 발전이다.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수학 원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하이젠베르크․슈뢰딩거․디랙 등의 「양자역학」을 생각하면, 뭔가 대단하고 혁신적인 이론들이라고 생각되면서도 아주 어려워서 일반인뿐만 아니라 학자 중에서도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심적인 압박감이 든다. 또한 과학과 대비되는 철학의 위상 저하라는 측면도 과학철학에 약간의 부담을 준다. 내 생각에 이것은 근거가 없지는 않지만 그 근거가 다소 빈약한 일종의 선입견이다.

 

   내 생각에 이런 종류의 선입견을 극복하고 문제 상황을 다소 새롭게 조망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대비되는 과학철학의 역할에 대한 일종의 통시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내가 갖게 된 생각은, 아주 초기부터 과학철학과 과학은 서로 구분되는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과학자는 과학을 실천하면서도 과학적 실천과는 다소 구분되는 ‘의미부여’와 ‘해석’을 한다. 그런데 과학자가 이런 ‘의미부여’와 ‘해석’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그건 과학자 또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의미부여’와 ‘해석’을 가지고 있어야만 인간은 과학적 실천을 실질적으로 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내 생각에 과학에 대한 ‘의미부여’와 ‘해석’의 작업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철학의 영역이 된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두 가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 처음에는 과학과 과학철학이 분화되지 않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처음부터 과학과 과학철학이 구분되어 있었지만 과학의 전문화 정도가 심하지 않아 서로 혼재되어 있었다가 과학의 전문화에 따라 원래 있던 둘 사이의 구분이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두 번째 방식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과학의 어머니였지만 개별 과학들을 다 독립시킨 오늘날에 철학이 할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철학은 과학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오히려 철학은 다소 부정적으로 말해 과학에 늘 붙어 다니는 ‘유령’이다. 이를 좀 더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철학은 인간이 과학을 하는 이상 늘 과학에 결부될 수밖에 없는 과학의 ‘정신’이다. 과학 하는 인간은 늘 철학을 필요로 하며, 인간의 과학은 늘 철학을 전제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