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한스 라이헨바흐와 20세기 경험주의 과학철학(1)

강형구 2024. 1. 5. 09:48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을 위해 먼저 밝힌다. 나의 블로그를 몇 번 찾아오신 분들은 이미 아셨겠지만, 나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못 된다. 생각나는 대로 약간 즉흥적이고 두서없이 글을 쓰는 편이므로, 이를 감안하여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또한 하나 더 이야기할 것이 있다. 나는 나의 철학적 아이디어의 우선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런 우선권을 고집한다면, 나의 아이디어를 블로그에 쓰지도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나의 글들에서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것을 자유롭게 자신의 목적에 맞게 활용하시면 된다. 그 분은 그 분의 글을 쓰는 것이고, 나는 나의 글을 쓰는 것이다.

 

   나와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 사이의 인연은 퍽 오래되었다. 나는 2014년에 한스 라이헨바흐의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라는 책을 영어에서 우리말로 번역하여 지만지에서 출판했는데, 이 출판도 우연한 계기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같은 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지만지에 편집자로 취직한 지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지인이 나에게 이 책의 번역을 부탁한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이 책보다는 라이헨바흐의 좀 더 쉬운 책을 번역하자고 제안했으나, 그 지인이 고집하는 바람에 수식도 많이 들어가는 퍽 어려운 이 책을 번역했다. 나는 나의 능력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뭐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번역했다. 돌이켜보면 고생은 좀 했지만 잘 했던 일이다.

 

   이 번역을 계기로 나는 지만지에서 라이헨바흐가 쓴 4권의 책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2014년), [상대성 이론과 선험적 지식](2015년), [원자와 우주](2017년), [상대성 이론의 공리화](2020년)를 번역하여 출간했다. 이미 라이헨바흐가 쓴 [시간과 공간의 철학], [자연과학과 철학(The Rise of Scientific Philosophy)], [코페르니쿠스에서 아인슈타인까지]는 번역이 되어 있다. 혹자는 번역이 좋지 않다고 불평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역자 선생님들의 번역 또한 충분히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기존의 번역을 대체하기보다는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작년에 출판사에서 나에게 “한스 라이헨바흐”를 주제로 작은 책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나는 한편으로는 이 제안이 반가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내가 충분히 준비되었나?”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나는 준비라는 것이 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좋은 기회가 오면 일단 잡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일단 하는 것으로 결정한 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나의 단점과 장점이 무엇인지도 더 잘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올해 라이헨바흐에 대한 책을 쓰기로 했다. 나에게는 과분하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독자들께는 너무 죄송하지만 약간 뜬금없는 영어 논문 혹은 저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나는 영어 논문과 저서가 너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의무 사항이 아니라면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군 복무를 생각해보라. 대한민국 남자 중에 정말 좋아서 군대에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도 대부분의 남자들은 군 복무를 한다. 그것이 나라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나도 40개월 동안 강원도 홍천에서 더위와 추위를 참으며 발톱 무좀에 걸리면서까지 군 복무를 했다. 그런데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나에게는 영어로 논문을 쓰거나 저서를 집필하는 것이 군 복무와 같은 일종의 의무 사항이라, 꼭 필요하지 않다면 굳이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우리말로 논문을 쓰고 책을 번역하고 책을 집필하는 게 좋다. 물론 내가 소속된 조직에서 나에게 영어 논문 혹은 영어 저서 집필을 의무 사항으로 규정한다면 나는 그 작업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는 의무 사항이라서 하는 것이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한국인 중 영어로 글 쓰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며, 그런 사람에게는 나의 사례가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역시 두서없이 글을 쓰다 보니 이렇게 원래 주제와는 관련이 없는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되었다. 어쨌든, 나는 올해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에 대해 논하는 작은 책을 한 권 쓸 것이고, 한동안은 그 책 집필을 위한 일련의 글을 나의 블로그에 올리려 한다. 이 글은 이러한 일련의 글을 위한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