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대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할 수는 없어도,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2024년 2월 6일 오후 9시 14분이다. 지금 이 순간은 이제 다시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세계에는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그 존재의 유지 혹은 변화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최소한 내 주변만 보면 그렇다. 물론 좀 더 먼 영역으로 논의를 확장하면 이 이야기는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것들, 이른바 ‘국소적인 것들과 관련한 파악’을 상당히 확신한다.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최소한 국소적 기준계의 관측자에게 그러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이러한 시간의 흘러감을 부정할까? 그렇지는 않다. 기준계 A에서 보았을 때 기준계 B의 상대 운동(등속 또는 가속)에 의해서 기준계 B에 있는 시계가 기준계 A에 있는 시계보다 느리게 간다고 해서, 기준계 A에 있는 시계가 멈추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기준계 A에 있는 시계의 경우, 만약 그 시계가 아주 좋은 시계라면, 그 시계는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시간을 잴 것이다. 여기서 ‘좋은 시계’란 시계 외부로부터의 영향이 시계의 시간 측정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시계를 말한다.
그런데, 시계가 멈추면 시간이 멈추는 것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시계이지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개 우리는 어떤 시계가 멈추면 다른 멈추지 않은 시계를 보고 그 시계를 고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안정된 시계란 무엇일까? 아마도 빛 시계일 것이다. 그런데 빛 시계조차도 완벽하게 안정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빛 시계를 시계이게끔 할 수 있도록 두 거울 사이의 간격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데, 두 거울 사이의 간격을 유지한다는 물리적 과정이 이상적으로 구현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울이 두 개 있고, 두 거울 사이를 어떤 물리적인 것이 지탱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거울과 물리적 지탱 물체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힘을 받을 것이다. 물론 시계의 크기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그 시계가 안정적인 것이 되기는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작은 시계가 물리적 힘의 영향을 아예 받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우리 인간이 세계 속에 존재하는 모든 물리적 힘 혹은 영향력을 파악하고 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과연 세계 속에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만이 존재할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확신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어떤 새로운 경험을 통해 또 다른 새로운 힘을 발견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소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있다.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들은 함께 존재하며, 이 존재들은 서로 독립적이고 무관한 것이 아니라 서로 의존적이고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이상적인 시계라고 해도 세계 속 존재하는 물리적 존재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과연 물리적 존재 및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분리될 수 있는 시계가 존재하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시계는 오직 우리의 상상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우리의 상상이 세계의 실상과 일치한다는 보장을 전혀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이 세계 속 존재자들이 서로 상호작용한다는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며, 시간은 이와 같은 존재 및 존재 상호작용의 파생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이 파생물로서 존재함을 늘 의식하지만,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확정해서 말할 수 없다. 존재 및 존재 상호작용이 변화할 가능성은 늘 열려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시간이란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최선의 시계가 그 간격을 통해 측정하는 무엇이다. 하지만 시간은 본질적인 것은 아니며, 존재의 파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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