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인공지능이 ‘낯선 지능’임을 이해하고 그것과 상호작용하는 것

강형구 2023. 11. 17. 10:01

   2023년 11월 현재, ChatGPT가 등장했던 초기에 인간 사회에 던져주었던 충격은 어느 정도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나의 경우 인터넷 즐겨찾기에 ChatGPT 홈페이지를 등록시켜 놓았고, 가끔 로그인하여 ChatGPT에게 이런 저런 주제들에 대한 의견을 묻곤 한다. ChatGPT는 상당히 똑똑하며, 나로서는 심사숙고하고 이런 저런 자료들을 많이 찾아보아야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아주 빠른 속도로 비교적 만족스러운 대답을 내놓는다.

 

   나는 처음에 ChatGPT를 시험해보면서 이질감과 당혹스러움을 강하게 느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가 ChatGPT를 의인화시켜서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나와 비슷한 다른 사람과 대화한다는 은연중의 전제를 갖고 ChatGPT에게 이런 저런 질문들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평가했다. 그런데 이런 이질감과 당혹스러움은 ChatGPT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많이 누그러졌다. 초기에 나는 어떻게든 ChatGPT가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은 질문들을 던지며 이 새로운 형태의 인공지능이 인간과 다른 점 혹은 인간보다 부족한 점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이 인간을 위한 새롭고 강력한 또 다른 도구임을 이해하며, 이 또한 인류 공동체가 개발해 낸 엄청난 발명품이라고 받아들인다.

 

   인공지능의 역사는 곧 인간 지식 발전의 역사이기도 하다. 유클리드(Euclid)의 『원론』으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은 대개 인간의 시각적 직관에 기초한 기하학적 추론으로 구성되었다. 르네상스 이후 대수학이 발전하면서, 데카르트(Descartes)는 해석기하학(analytic geometry)을 제시하였고, 뉴턴(Newton)과 라이프니츠(Leibniz)는 대수학적 연산에 기초한 미적분학(calculus)을 개발했다. 인간의 추론 과정과 지식을 도형이 아니라 대수학적 기호로 구성된 명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착상에 깊게 들어간 것은 라이프니츠였다.

 

   이후 인간의 직관적 추론에 의존했던 수학이 점점 더 논리화되고 공리체계화되었다. 물리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의 기초 언어 또한 수학이었기에, 자연과학 전체가 논리화와 공리체계화의 경향을 띠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경향이 19세기 말에 부흥하기 시작한 전자기 기술과 결합했다. 전자기 기술을 통해 만든 회로는 논리화된 수학과 결합하여 빠른 속도로 ‘계산’하기 시작했고, 컴퓨터(computer)는 그 이름의 뜻을 볼 때 아주 빠르게 연산하는 계산기이다.

 

   빠른 계산기인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많아졌다. 우리가 이전까지는 감각 기관을 통한 오감(시각, 청각, 촉각, 미각, 통각)으로 감지하던 세계에 대한 정보를, 이제는 각종 정밀 측정 도구들이 탐지하여 정량화시킨 후 데이터로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계에 대한 정보가 정량화된 데이터가 되면 그게 어떤 정보이든 “계산”할 수 있고, 그러한 계산 결과로부터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세계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정량화된 데이터로 바꾸어 계산할 수 있게 되면서, 컴퓨터는 단순한 숫자 계산만이 아니라 논리 게임을 수행하고, 향후의 기상 변화와 주식 시장의 변화를 추론하며, 인간이 기호화된 형태로 제시하는 언어적 명제에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언어적 대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ChatGPT는 인간 역사의 산물이자 인간 지식의 집적체이다. 이 대량 언어 데이터 기반 생성 모형은, 전자적 형태로 집적되어 있는 광대한 지식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할 수 있으며, 인간이 기호를 통해 표현한 특정 언어적 문장(들)을 접했을 때 이에 적합한 대응 문장(들)을 데이터베이스의 지식에 대한 탐색 및 언어 생성 알고리즘을 통해 생성해낸다. 어떤 의미에서 ChatGPT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답변은 지금까지 인류가 축적한 지식의 총체가 만들어낸 산물인 셈이다. ChatGPT는 우리가 예전에 접했던 수동적인 백과사전이 아니라, 수요자인 인간의 요구에 맞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능동적인 백과사전이다. 이 능동적 백과사전은 인간의 요구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며 광대한 데이터베이스 속 정보를 탐색하여 수요자의 니즈에 맞춘 적절한 형태의 지식을 그 결과 값으로 내놓는다.

 

   물론 ChatGPT에 대한 이상과 같은 나의 서술은 퍽이나 불완전할 것이지만, ChatGPT에 대한 이 정도의 이해를 갖고 있는 지금의 나는 처음보다는 훨씬 더 차분하고 냉정하게 ChatGPT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ChatGPT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대량 언어 데이터 기반 생성형 인공지능은, 조만간 이전까지 인간 행위자들이 담당하고 있던 많은 작업들을 인간을 대신하여 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대부분 인간이 직접 빨래를 했지만 오늘날 직접 빨래를 하는 사람을 우리 사회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듯, 앞으로 기본적인 지성적 계산 혹은 처리 작업은 대부분 Chat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처리하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인간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자동차가 발명된 후 인력거 기사는 사라졌지만 대신 택시 기사가 많이 등장했듯이, 앞으로 인간은 여전히 생성형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하면서 그 생존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제하고, 인공지능을 작동하게 만드는 기본적인 연산 메커니즘을 프로그래밍하고, 인공지능이 산출해 낸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로부터 유용한 통찰을 도출해내는 것은 여전히 유기적 신체 및 독립적인 의식과 자각을 갖춘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인공지능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선 지능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러한 낯설음이 오히려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만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인공지능의 기술 발전이 보여준 것처럼, 우리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과 능력이라고 생각되던 것들 역시 이후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에 의해 구현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공지능을 과하게 의인화하여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겠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언제까지나 인공지능과는 다르고 차별화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어쩌면 인공지능은 우리 인간에 대해서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더 깊은 통찰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은 낯선 인공지능이 앞으로 점점 더 친숙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그와 같은 의미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일종의 거울이다. 인공지능의 발전 과정에서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할지의 여부는, 아직까지는 그 누구도 속단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