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선비처럼 살기

강형구 2022. 7. 8. 14:09

   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오래전부터 꿈꾼 삶은 ‘선비처럼 사는 것’이 아니었을까. 좀 황당할 수도 있겠다. 21세기에 ‘선비’라니! 네이버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선비’에는 4가지 뜻이 있는데, 그중 세 번째 뜻이 가장 내 마음에 든다.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 물론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을 ‘선비’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고, 나 또한 그런 의미에서 ‘선비’가 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나의 아버지는 상인이셨다. 상인만큼 실용적이고 실리적인 직업인이 있을까.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늘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자신이 걸었던 길, 즉 상인의 길을 권하시지는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시며 나를 내버려 두셨다. 내 삶의 결정적인 선택들은 늘 나의 몫이었다. 그래서 나는 ‘선비’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앞가림은 스스로 할 줄 아는 ‘선비’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우리 집이 큰 부잣집이었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계속 공부하고 싶었던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직업군인인 장교의 길을 택했다. 나는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부모님을 의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전역 후 군 생활 동안 모은 돈으로 학교 근처에 원룸을 하나 마련했다. 대학원에 다닐 때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늘 아르바이트를 했다. 취업 준비를 할 때는 그때까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둔 돈을 밑천 삼아 매일 구립도서관에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입사 지원서를 썼다.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까지 ‘성공’이라는 목표를 설정한 적이 없다.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할 때도 그냥 시험 준비가 내가 해야 하는 ‘의무’라고 생각했기에 성실하게 임했다. 과학철학을 공부할 때는 그저 과학철학을 통해 자연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에 들었다. 나는 학문적으로 높은 성취를 거둬 성공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저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삶이 멋져 보였다.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대학원에서 과학철학을 계속 공부한 것은, 학사와 석사 과정까지의 공부만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연구하고, 더 잘 알고 싶었다.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인 나는 나의 막중한 책임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최소한 가족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일도 할 것이다. 나는 결코 이상을 위해서 현실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여건 속에서 가능한 최선의 방식으로 선비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관되고 성실하게 계속 과학철학 연구를 하는 것, 그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연구하면 나의 연구 성과가 분명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 도움이 굳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괜찮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그저 나 자신만을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것만큼 의미 없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한편으로는 내게 주어지는 사회적인 의무들에 충실하면서도, 그 의무 수행의 대가로 내게 주어지는 한 줌의 자유 속에서는 과학철학 연구에 파묻혀 살고자 한다. 명성을 얻는 것은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대단한 권력이나 권위를 얻고 싶지도 않다.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기여를 하면 된다. 돌아보면 나는 지금까지 충분히 선비와 같은 삶을 살지 못했던 것 같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는 진정 선비와 같은 삶을 살아내고 싶다. 세상에 민폐를 끼치는 선비가 아니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선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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