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순신을 생각한다

강형구 2022. 7. 28. 15:35

   나는 지난 5월에 83번째 헌혈을 한 후 헌혈 기념품으로 영화관람권을 받았다. 영화관람권을 선택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올해 여름에 김한민 감독의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이 개봉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때 받은 영화관람권으로 오늘 오전에 동네 영화관에서(현풍에도 극장이 있다) 영화 [한산]을 보았다.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박사논문을 수정하는 사람으로서 감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나는 이순신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놓칠 수 없었다.

 

   인간은 영악하고 잔혹하다. 이것은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모든 생명은 영악하고 잔혹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인간 아닌 다른 동물들은 인간만큼 도가 과도하게 지나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들은 적당한 수준에서 만족한다. 인간이 아닌 동물의 시각에서, 서로 싸우기 위해 인간으로 이루어진 수만 명의 군대가 벌판에서 서로 마주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본다고 해 보자. 얼마나 두렵고 끔찍할 것인가? 심지어 오늘날과 같이 고도로 군사적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에서부터 그랬다. 인간은 지구 위 다른 모든 종류의 생명을 모조리 정복한 이후에도 서로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이게 현실이다.

 

   과연 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선하고 일본은 악했을까? 당시 조선의 군사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고, 일본은 내전으로 인해 군인들의 수가 많아지고 전쟁의 기술력도 높아진 상황이었다. 동아시아 세계에서 그전까지 늘 변방에 있었던 일본의 관점에서는, 조선의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한반도를 거쳐 대륙으로 진출하고자 시도하는 것이 여러모로 합리적인 상황 아니었을까?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나라가 세워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주목한 것은, 누가 보아도 조선이라는 나라가 없어질 것임이 거의 확실하게 보였던 그때 이순신이라는 한 명의 군인이 보였던 행보였다.

 

   몰락한 양반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뜻을 품고 문관이 아닌 무관의 길을 택했다. 늦은 나이에 비교적 평범한 성적으로 과거에 급제한 후 북방 변두리를 전전했다. 육군이었던 그가 수군이 되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아마 그 시절에 지각 있는 인물들은 상당수 나라에 전운이 돌고 있음을 감지했을 것이다. 수군보다는 육군이 장수로서 더 성공하는 길이었겠지만, 만약 일본이 문제라면 바다에서 일본을 막아내야 했다.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육군에서 찍힌 이순신은 수군에서도 계속 변두리를 돌았을 것이다. 그 성격이 올곧아서 아첨하거나 뇌물을 주지 않고, 분명 눈치 없이 윗사람에게 바른말을 해 미움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수군은 군사기술 상으로 일본과 대등하거나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육군의 경우 지휘관의 용맹함이나 전투 능력, 카리스마, 군사들의 체력과 호전성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숱한 내전을 치렀던 일본 육군은 전반적으로 그 수준이 강력했을 것이다. 이에 대비하여 수군은 전함과 포사격을 활용한 전략 전술의 전개가 중요하다. 적어도 이 점에서 조선의 전함은 일본보다 크고 튼튼했으며 조선의 화포 기술 역시 일본보다 우위에 있었다. 이순신은 냉정한 전략가였다. 오래전부터 전쟁을 준비했고,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는 그가 지휘한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의 전투는 거의 예술에 가까울 정도로 치밀하다.

 

   그런데 대체 왜 그랬을까? 왜 절체절명의 위기에 나라를 지키는 전선으로 나갔고, 왜 그토록 임금의 미움을 받으면서까지 나라를 지켰을까? 과연 ‘의(義)’를 위해서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 없이, 같은 땅에서 같은 말을 쓰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군의 손에 죽임과 유린을 당하는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상황을 막으려 그런 것 아니었을까? 내게 이순신은 평화와 생명을 ‘지키는’ 무인이다. 그는 결코 정복자가 아니었고,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까지 나라의 목숨을 ‘지킨’ 사람이다. 어쩌면 이순신이 그토록 끝까지 붙잡고 싶었던 것은 그와 같은 ‘지키는 것의 의로움’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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