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경상지역 과학철학 연구자 및 교육자

강형구 2022. 8. 14. 09:48

   나의 본적은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마수리다. 아버지의 본적을 따랐다. 오늘날 본적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 경북 성주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자주 다녔고, 나의 외가는 경상남도 합천에 있었다. 성주와 합천은 가야산을 끼고 있으며 거리상 가까운 편이다. 아버지는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대구가 아니라 약간 떨어진 부산에 정착하셨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다시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 근처인 대구 달성군에 정착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에서 성주와 합천은 자동차로 1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과학철학에 관심을 가졌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일찍부터 관심을 가진 것이다. 그렇게 일찍 관심을 가져 꾸준하게 공부했기에,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계속 공부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고 황당하기까지 한, 과학철학에 대한 그 열정 덕택에 대학 면접관들(교수님들) 앞에서도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러셀, 화이트헤드 등을 언급하며 면접에서 통과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나는 뛰어난 능력보다는 신념과 의지를 가졌던 사람이었다. 중간에 끊지 않고 계속 과학철학을 공부했다. 군 복무를 하면서도 홍천도서관에 계속 나가 관련 책들을 읽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그랬다.

 

   나는 나의 위치를 잘 안다. 서울대학교 교수분들 중에는 학부 시절부터 모범생이었고 장학금을 받아 외국의 우수한 대학에 유학을 다녀온 후 학자의 길을 착실히 걸어가며 교수가 된 사례가 많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학부 시절 전혀 모범생이 아니었으며 학부 성적이 그저 그렇고, 대학원 과정 중간에 공부를 중단한 후 1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기도 했다. 계속 공부를 하고 싶었고 끝내 포기하지 않아 겨우 지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이제 박사학위 취득 또한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나는 나의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 그저 은근과 끈기로 버텨온 것뿐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내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향후 2년 이내에 박사학위를 받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이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렇게 나는 다시 부모님의 고향 인근으로 돌아와 정착했다. 나의 아내 역시 부산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낸 후 경상북도 구미에서 자란 사람이다. 우리 둘 다 학문적 능력이 뛰어나지 않지만,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흥미를 갖고 계속 공부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돌이켜보면 세상에는 ‘운명’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제 나는 나에게 맡겨진 역할을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나는 평범한 과학철학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경상지역에 정착하여 내 남은 삶을 이 지역에서 보내게 될 듯하다. 만약 과학관에 계속 남게 된다면 나의 과학철학 지식을 과학관의 업무와 결합하면서 대학에서 강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것이고, 만약 대학으로 간다면 대학에서 계속 과학철학 연구 및 교육을 하게 될 것이다. 어떤 경우든 나의 본질적인 정체성은 과학철학 연구자다.

 

   또한 나의 연구 분야는 20세기 전반기의 과학 사상사다. 아인슈타인의 논문들, 슐리크와 필립 프랑크(Phillipp Frank)의 물리 철학 저술들, 에딩턴과 바일의 저술들, 카르납의 박사학위 논문과 [세계의 논리적 구조], 라이헨바흐의 저술들, 젊은 파울리가 쓴 상대성 이론 해설 등 20세기 전반기 물리 철학 관련 주요 원전들을 번역하고 연구하는 것이 나의 우선적인 목표이다. 이에 더해, 물리학의 철학과 관련한 교과서적인 책들을 번역하거나 이러한 책을 직접 써서 우리나라에 물리학 철학 연구 전통을 수립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기본적인 과제라고 생각한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일관되게 연구해서 그 성과를 남길 것이다.

 

   내가 장기판 위에 있는 여러 말 중에서 어떤 말인지, 이 판 위에서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게 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나는 경상지역에서 태어나 자라고 서울에서 공부한 후 다시 경상지역에 정착한, 경상지역 과학철학 연구자이자 교육자이다.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즐겁고 여유롭게 살기  (0) 2022.08.19
할 줄 아는 것이 공부밖에 없는 사람  (0) 2022.08.15
이순신을 생각한다  (0) 2022.07.28
전자기적 정보 이주  (0) 2022.07.20
선비처럼 살기  (0) 2022.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