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할 줄 아는 것이 공부밖에 없는 사람

강형구 2022. 8. 15. 13:59

   나는 박사학위 논문 수정을 하다가 지치면 다른 글을 쓰면서 한숨 돌린다. 나는 이번 연휴에 가족들을 데리고 부모님이 계신 부산(내가 자라기도 한 곳)에 와 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이렇게 황금 같은 여름 연휴에 아내,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놀아야 하겠지만, 나는 부모님과 아내, 누나(부산에 산다)에게 아이들을 맡겨 놓고 집 근처의 카페에 나와 논문 수정을 한다. 매일 한글 문서를 붙잡고 비슷한 종류의 문서 작업을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미 시작했고 결국은 끝을 봐야 하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정말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는 사람이다. 잘 놀지 못한다.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다. 아내는 진지하고 공부를 좋아하는 내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공부라도 좋아하지 않았으면 장가도 못 갔을 것을 생각하니 참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같은 사람과 결혼해 준 아내에게 너무 감사하다. 물론 나는 집에서 열심히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며, 육아휴직자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다. 걷거나 달리는 운동도 좋아한다. 턱걸이도 10개 정도는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단점은 ‘잘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

 

   그냥 나는 공부에 특화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마음이 편하다. 야구 선수가 야구에 특화되고 미술가가 미술에 특화된 것처럼, 그냥 나는 과학철학 연구에 특화된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관심 분야가 다양하지 않고 머리가 그다지 좋지도 않아, 나의 깨어 있는 거의 모든 시간을 과학철학 연구를 위해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나는 함께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나와 함께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지루해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것을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사람들끼리 즐겁게 놀고 있으면 나는 그냥 자리를 피해 준다.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내가 과학철학 연구를 하는 것에 대해서 후회해 본 적은 없다. 비록 민간기업에서 일해 보지 않았지만, 나는 10년 동안 공공기관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 생활의 많은 부분이 나에게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거듭 느꼈다. 주임, 대리, 과장, 차장, 팀장, 부장, 본부장. 혹은 연구원, 선임 연구원, 책임 연구원. 진급하면 권한과 책임이 모두 커지고 급여도 높아진다. 그런데 부장, 본부장 혹은 책임 연구원이 된다고 해서 내가 삶에 만족을 느낄까?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나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책과 논문을 읽고 번역하면서 사는 것이, 나의 논문 혹은 저서 혹은 번역서 내용을 토대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면서 사는 일이 더 행복하다. 그것은 그저 내가 그러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돈이 많다고 해도 제대로 안 쓰고 살 사람이다. 그만큼 돈은 최소한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결국 나는 나라는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취미이자 특기이자 부업(아직 본업은 아니다)을 선택했다. 계속 글 읽고 생각하고 글 쓰고 말하는 삶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겪고 있는 길고 고된 논문 수정 과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냥 이게 나에게 가장 맞는 활동이고, 내가 잘하는 일이며, 나에게 가장 큰 보람을 주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내가 쓰는 글이, 내가 하는 말이 얼마만큼이나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최소한 그러한 나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더 나아가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아직 내가 과학철학 분야에서 무명인 인물이라(케임브리지대학교 장하석 교수님, 서울대학교 천현득 교수님과 대조적) 다른 사람들과의 활발한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예상외로 질문을 하면 잘 받아주고 고민 상담도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나의 이런 점이 잘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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