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즐겁고 여유롭게 살기

강형구 2022. 8. 19. 16:32

   어쩌면 모든 사람의 바람은 ‘즐겁고 여유롭게 사는 것’이 아닐까. 나 또한 그러하다. 혹은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사는 것’을 바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내 생각에 즐겁고 여유롭게 사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그저 내 갈 길을 가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내 갈 길을 가면 굳이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낼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화낼 시간이 아까워지기 때문이다. 아까운 인생이다. 시간 낭비를 할 이유가 없다.

 

   나는 내가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왜냐? 나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과학철학자 라이헨바흐를 제대로 연구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이건 정말 행운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같이 멍청하고 재능 없는 사람이 이렇게 라이헨바흐를 연구하고 있는 것 아닌가. 내가 볼 때 라이헨바흐는 흄, 칸트, 니체 수준으로 대접받고 연구되어야 할 철학자다. 20세기의 경험주의 철학자라고 하면 단연 라이헨바흐다. 이제 나는 박사학위 논문도 거의 다 쓴 상황이라 더 바랄 게 없다. 내가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는 게 감지덕지할 정도다. 나보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많은 연구자가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을 연구하길 바란다. 특히 물리학을 잘하고 독일어도 잘하는 연구자라면 훨씬 더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과학철학 연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그것은 라이헨바흐를 중심으로 논리경험주의의 주요 저작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연구하고, 이를 더 확장해 20세기 전반기의 과학 사상사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의 글을 몇 번 읽어본 사람이라면 내가 계속 이 얘기를 되풀이해서 하고 있다는 걸 잘 알 것이다. 나는 철학 사조로서의 논리경험주의를 제대로 씹고 소화해서 우리의 것이 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번 시류에 따라 이 철학자 저 철학자에 열광하지 말고, 제대로 번역하고 곱씹고 소화해서 탄탄한 연구 전통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내 예상에 나의 번역과 연구는 먼 미래에 비추어보면 그저 디딤돌이자 중간 과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저 연구의 초석을 놓을 뿐이다.

 

   그저 그런 철학적 능력의 소유자인 내가 가장 확실하게 과학철학 연구에 공헌하는 유일한 방법은 끝까지 내 길을 가는 것이다. 백종현 교수께서 우리나라 연구자들에게 칸트 연구의 길을 활짝 열어놓은 것처럼, 나는 논리경험주의 특히 라이헨바흐 과학철학 연구의 길을 열어놓으려 한다. 당연히 과학철학이라는 분야에는 저명한 학자들이 아주 많다. 카르납, 쿤, 포퍼, 반프라센, 해킹, 갤리슨 등등. 라이헨바흐는 이 많은 사람 중 한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누군가가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는 아마도 나의 번역과 저술을 보면서 조그만 지침이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그 이상의 욕심을 가질 만한 능력이 나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는 할 일이 너무 많다. 너무 많아서 다 하지 못하고 죽지 않을까? 라이헨바흐의 주요 저술을 번역하고 연구하는 일만 해도 상당하다. 슐리크, 카르납, 필립 프랑크로 외연을 넓히면 할 일은 더 많아지고, 바일, 에딩턴, 파울리, 라우에 등을 포함하면 더 일이 많아진다. 아인슈타인 전집 번역은 어떤가? 과연 그것까지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불가능한 일에까지 욕심을 부리면 안 될 것 같다. 그래도 누군가가 꼭 아인슈타인 전집 번역을 해줬으면 좋겠다. 독일이 뉴턴 이후 아인슈타인을 배출했다면, 대한민국은 아인슈타인 이후 진정으로 걸출한 물리학자를 배출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는 아인슈타인 전집을 반드시 한국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믿는다. 아름다운 모국어로 번역해서, 누구나 수시로 찾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