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조심해야 하는 이유

강형구 2022. 4. 24. 11:56

   대학 입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 여러 이유가 있다. 100점 만점의 표준화된 시험에서 95점 이상의 점수를 획득한 사람들을 공부를 잘한다고 잠정적으로 정의한다. 10만 명의 학생들이 있다고 할 때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1천 명 정도 된다고 보자. 1천 명의 학생들은 각양각색이다. 이중 지성적 추론이 태생적으로 고도로 발달한 학생들이 100명이라면, 나머지 900명의 학생들은 보통 혹은 보통이 약간 넘는 지성적 능력을 갖고 공부를 잘하게 된 셈이다. 100명의 학생들은 태어난 지성적 능력으로 인해, 이들이 어떤 종류의 환경에 처해 있었다고 해도 공부를 잘하게 되었을 것이다. 나머지 900명의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게 된 이유는 지성적인 능력이 아닌 다른 것에 있다.

 

   실제로 나머지 900명 중 대략 400명 정도는 체계적인 사교육으로 인해 육성된 학생들이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공교육 이외에도 막대한 재정을 들여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우수한 사교육을 받음으로써, 보통 정도의 지성적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라는 특정한 분야에서 일종의 전문성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서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인위적인 통제를 가했을 것이다. 적성에 맞지 않고 하기 싫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공부를 해야 했으므로, 이 과정에서 통제되고 억압된 정동을 주기적으로 다른 경로를 통해 분출해야 했다. 어떤 학생은 체육 활동이나 예술 활동에서 그와 같은 분출구를 찾았다면, 다른 학생은 다른 취미에서 그와 같은 분출구를 찾았을 것이다.

 

   우리는 대학 입시 공부를 고도로 잘하는 전문성을 갖춘 학생들 중에서, 특히 부유한 가정 출신의 학생들 중에서 기묘한 취미와 성향을 갖고 있는 학생들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특히 이와 같은 부류의 학생들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대개 이들은 대외적인 공간에서는 번듯하고 모범생과 같은 행위를 하는 반면,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에서는 자신의 감정적 스트레스를 독특한 방식으로 분출하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엘리트 학생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소위 문명화된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러면 나머지 500명은 어떤 학생들인가? 이들은 그다지 부유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나, 부모님으로부터 특별한 지성적 자극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잘하게 된 학생들이다. 이들은 사회로부터 자극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뛰어난 수학자와 과학자에 대한 우리나라 또는 외국의 영화를 수입해서 상영하며,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높이 평가하고, 세계에 대한 진리를 탐구하거나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상화된 이야기들을 지속적으로 유포하기 때문이다. 여가를 가진 인간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에게 남는 시간의 지루함을 해소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는데, 500명의 학생들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주변에서가 아니라 사회 차원에서 제공하는 동기에 낚여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학생들은 순박한 편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회에서 공부라는 것은 구성원이 사회 속에서 높은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얻기 위한 일종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에서 높은 지위와 권력을 얻으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강렬한 쾌락을 얻을 수 있다. 이에 반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학문과 진리 탐구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며,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그런데 순박한 학생들은, 학문과 진리의 탐구가 사회 속 지위와 권력보다도 더 신성한 것이라고 믿으며, 이러한 믿음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헌신하려 한다. 이러한 순박한 학생들이 학문과 진리 탐구에서 좌절한 뒤 다른 종류의 일을 하려고 하면, 이들은 미련하게 공부에만 몰두하지 않고 두루 여러 일을 해 봄으로써 사회 속에서 산전수전 겪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미숙하므로 부당하게 이용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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