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의 위안

강형구 2022. 4. 10. 23:11

   나는 요즘 미국의 수학자 모리스 클라인(Morris Kline)이 쓴 수학사를 읽고 있다. 나는 수학사를 읽을 때마다 일종의 위안과 좌절을 느끼곤 한다. 수학사의 위안이란 수학 역시 아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협업을 통해 이어지고 변화되어 온 학문임을 확인하는 데 있다. 어쩌면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인간 사고의 진화 결과를 보여주는 인류의 유물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수학은 인간이 사고를 통해 자연 세계를 분석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여러 시도 및 성공을 보여준다. 수학의 역사는 인간이라는 생물 종이 지구 위에서 살아가며 주변 자연을 분석하고 이해하여 그 결과를 개념화시킴으로써 자연과 상호작용해 온 과정을 보여준다.

 

   나에게 수학사가 주는 좌절이란, 수학에서 화려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의 행적을 읽으면서 느끼는 거리감이다. 18세기를 대표하는 수학자는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다. 오일러의 지적 성취를 보면 그는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어떻게 한 명의 사람이 그토록 많은 수학적, 물리학적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오일러를 보면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은 수학의 근처에도 가면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런 종류의 좌절에는 익숙한 편이다. 내가 예전부터 수학사를 읽을 때마다 느꼈던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그저 머리를 끄덕여가며 천재들의 업적에 감탄하면서 수학사를 다 읽은 다음, 다시 내게 맞는 수학책을 찾아 읽으며 조금씩 나의 이해를 다듬으면 된다.

 

   요즘 나는 예전에 본 적이 있는, 보스턴 대학의 과학철학 콜로퀴움 영상을 보았다. 2011년 쯤 촬영된 영상이었고 논리경험주의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1933년부터 베를린 학파와 비엔나 학파 철학자들은 독일의 나치 점령을 피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 등지로 이주했다. 이들은 많은 경우 미국 대학의 철학과로 임용되었다. 미국은 이들이 새로 개척한 종류의 철학, 이른바 ‘과학적 철학’을 이식하기에 적합한 국가였다. 하지만 논리경험주의자들이 미국 대학 철학과에 정착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새로운 전문 분과인 ‘과학철학’을 만들어야 했고, 과학철학이 대학과 사회 속에서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를 협상하고 보여주어야 했다. 나는 이들이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었을 고생을 상상해 본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새로운 터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논리경험주의자들은 과학철학을 미국에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정착이 성공했고,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연구하러 간 몇몇 철학자들이 과학철학을 전공하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일부 대학에서도 과학철학 전공 교수님들을 채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져보면 그 계보가 복잡하긴 하지만 나 또한 논리경험주의자들 덕택에 대학에서 과학철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이라는 전문 분야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국립대구과학관 채용에 지원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과학관에서 과학사 또는 과학철학을 전공한 석사 이상의 인원을 채용했기에 석사 학위를 가진 내가 지원할 수 있지 않았는가. 2017년 대구과학관 입사 후 작년인 2021년까지 나는 과학관에서 전공을 살려 일하는 과정에서 각종 시행착오를 겪었다. 거의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과학관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자가 전공을 살려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나 자신의 생각이 조금이나마 정리된 것 같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한 모든 학생들이 졸업하는 것은 아니며, 졸업한다고 해서 모든 학생들이 교수가 되는 것도 아니다. 교수가 되는 일부 뛰어난 학생들을 제외한 나머지 전공자들은 어떻게든 전공을 살려 대학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삶을 이어간다. 나 또한 그런 전공자들 중 하나다. 역사 속에는 성공한 소수뿐만 아니라 성공하지 못한 다수의 이야기도 나온다. 어쩌면 내가 역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평범하지만 치열한 삶을 살았던 다수의 이야기 속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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