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아마추어 재야 과학철학자

강형구 2022. 4. 11. 16:20

   어느덧 2022년 4월 중순을 바라본다. 나는 4월 원고 집필을 위해 수학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있다. 4월 원고가 마무리되면 기나긴 원고 수정의 작업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와 같은 수정에 대해서 그다지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 나는 그저 그것을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받아들인다.

 

   나는 나의 박사학위 논문이 높은 평가를 받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나는 전혀 환상 같은 것을 갖지 않고 있다. 나는 운 좋게도 서울대학교 학부에 입학하긴 했지만 결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지 못했다. 대학원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그저 과학철학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 대학원에 입학한, 학문적인 재능이 별로 없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겨우 심사를 통과해서 박사학위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사학위를 받게 되면 좀 더 당당하게 과학철학 학문 분야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물론 그 기여라는 것이 아주 미미하겠지만, 어쨌거나 기여는 기여 아니겠는가.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는 강의를 할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 [과학사개론], [과학철학개론]과 같은 강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논리경험주의], [시간과 공간의 철학] 등과 같은 세부 주제에 대해서 강의를 하는 것 또한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강의 여부와는 상관 없이 나는 매년 2편 이상의 학술논문을 집필하고 매년 1권 이상의 과학철학 저서를 번역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앞으로 내가 30년 정도 더 학술 활동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할 경우, 대략 60편의 학술논문과 30권의 번역서를 출판할 수 있는 셈이다. 먼 훗날 내가 쓴 논문들을 모아서 단행본으로 출간하고 싶다. 만약 책을 출판해 줄 출판사가 없다면 그냥 내가 모아서 멋지게 제본을 한 다음 그 책을 나의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다.

 

   사실 나의 목표는 내가 생각할 때 지극히 개인적이다. 나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에 태어나신 후 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가계를 이끄셨다. 1982년에 태어난 나는 가족들 특히 부모님으로부터 지성적 자극을 얻지는 못했다. 다만 나는 학창 시절에 공부에 소질이 좀 있었고 과학책 읽기를 좋아하여 이렇게 과학사, 과학철학 연구자가 되었다. 나와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우리처럼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들 중 최소한 한 명이라도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 아이에게는 나와 아내가 남긴 글들이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 나는 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해왔다고 생각한다. 다른 뛰어난 사람들과 비교할 때 나의 학문적 성과는 보잘것없는 것이겠지만, 최소한 나는 학생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나 자신만의 학문을 추구해나가고 있다.

 

   나의 아이가 어떤 대학으로 진학하는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그 아이가 어떤 분야이든 상관없이 계속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나는 그 아이에게 나의 학문적 성과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내가 쓴 논문들과 내가 번역한 책들을 남길 것이다. 만약 나의 아이들 중 아무도 학문에 관심이 없을 경우, 나라는 개인에 대한 기록 차원에서 나의 일기, 글, 논문 등을 간결하게 정리하여 남길 것이다. 비록 나는 보잘것없는 연구자로 남겠지만, 훗날 나의 자손 중 한 명이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뛰어난 연구자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만약 내 후대에 그런 뛰어난 자손이 생긴다면, 그에게 할아버지 혹은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하나의 좋은 지적 유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마추어 재야 과학철학자다. 10년 전만 해도 내가 이와 같은 종류의 재야 연구자가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관없다. 그저 내게 남은 30년 동안 꾸준히 연구하여, 내 후대의 사람들 특히 나의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참고할 수 있는 글들을 남기고 싶다. 아마 그게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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