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사소한 걱정들

강형구 2022. 4. 6. 15:35

   수학사를 읽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재미있다. 내가 예전에 과학고등학교에서 공부할 때, 학생들은 정규 수업이 끝나면 독서실에서 각자의 책상에 자리를 잡아 밤 10시 정도까지 공부를 했다. 그런데 그때 나는 대부분의 경우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를 읽거나 문제집을 푼 것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서 혹은 학교 도서관에서 과학에 관련된 다양한 책들을 빌려서 읽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수학자이자 수학사학자였던 하워드 이브즈의 수리철학 책과 수학사 책을 한 친구로부터 빌려서 읽었다. 그때도 나는 수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내 나름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나는 요즘 수학자이자 수학사학자였던, 이제는 고인이 된 모리스 클라인의 [수학사상사]를 읽으면서 큰 재미를 느낀다. 수학을 바라보는 클라인의 시각이 어떤 것인지 약간 감이 오고, 그의 시각을 나 또한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수학사, 물리학사 같은 역사적 작업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물론 수학자, 물리학자의 본업이 역사 연구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밀과학에 대한 역사적 글들을 읽으면서 정밀과학의 본성에 대해 좀 더 깊이 성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적어도 나에게 분명하게 여겨진다. 오늘날의 우리나라에도 김용운, 김용국 교수님을 이어서 수학사를 연구하고 있는 수학자들이 계신다. 이에 관한 대표적인 예로 광운대학교의 허민 교수님을 들 수 있겠다.

 

   그런데 개인적인 나의 바람은 수학자들의 수학사 연구에 과학사, 과학철학적 관점을 가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세희 교수님은 뛰어난 수학자이며 수학사와 수학철학에도 큰 관심을 가진 분이시지만, 박교수님은 주로 수학 연구에 집중하시면서 곁다리로 수학사와 수학철학을 연구하셨다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서양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잘 이해하는 수학자와 자연과학자가 수학과 자연과학을 연구하면서도 수학사와 자연과학의 역사를 연구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작업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나는 서울대학교 수학과의 김홍종 교수님 또한 수학사에 일가견이 있으신 것으로 알고 있지만, 김교수님의 수리철학이 깊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의 이런 생각이 다소 버르장머리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오래전부터 수학이나 자연과학의 문제 풀이보다는 수학의 역사와 사상, 자연과학의 역사와 사상에 더 관심을 가져왔다고 본다. 실제로 내가 작업하고 있는 박사학위 논문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상대성 이론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이와 관련된 사상(철학)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주제에 대해서 작업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저 내가 이 주제에 큰 흥미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이와 같은 학문적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하면서도, 과연 나의 연구 작업이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곤 한다. 나의 생각, 나의 글이 얼마나 학술적인 가치를 가질까. 다른 사람들이 수학과 자연과학을 이해하는 데 나의 생각과 글이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사실 이러한 걱정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치가 있는 작업이라면 오래도록 살아남아 사람들 사이에서 기억될 것이고, 그다지 가치가 없는 작업이라면 자연스럽게 잊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내가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괜한 기대와 근거 없는 실망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헛되게 보내기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나에 대한 환상을 갖는 일 없이 묵묵하게 내가 할 일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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