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내적 논리를 따름

강형구 2022. 3. 26. 10:06

   나는 독립적인 개인의 개념을 믿는다. 독립적인 개인은 사회적 제도와 양립가능하지만 결코 사회적 제도에 종속되지 않는다. 독립적인 개인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사회적 제도와 타협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협이지 종속이 아니다. 극단적인 경우 독립적인 개인은 사회적 제도를 자신의 의지에 근거하여 거부할 수 있다. 이처럼 개인이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사회 유지와 발전 역시 일종의 타협의 결과물이다. 사회는 개인이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명세화하여 제시할 수 없다. 이것은 개인의 의지와 자율성에 따라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이제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자연 현상을 소수의 원리들로 일관되게 설명하는 물리학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복잡한 자연 현상 자체가 나에게는 매력적인 대상이었다. 나는 때때로 등산을 하며 자연이 너무 아름다워 한동안 넋을 놓고 큰 바위 위에 누워 자연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이런 다채롭고 풍부한 자연 현상을 물리학이 논리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다만 나에게는 논리적인 문제 풀이, 어려운 수학 및 물리학 문제 풀이에는 두드러지는 재능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자연의 원리가 갖는 의미, 물리학 원리를 통한 자연 설명의 단순성이 갖는 의미 등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부터 수학사, 물리학사에 관련된 책들을 서점과 도서관에서 찾아서 읽었다.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져 있고, 철학과는 문과에 속하고 수학과나 물리학과는 이과에 속하며, 우리나라 이공계 교과목이 문제 풀이 위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내가 직면한 사회적 교육제도의 현실이었다. 또한 철학과에 대한 근거 없는 부정적인 시각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게 퍼져 있다는 것 역시 내가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현실이었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서점에서 라이헨바흐의 [시간과 공간의 철학]을 발견해서 읽었는데, 이때 이 책에 담겨 있는 종류의 철학이 나에게 가장 적합한 종류의 철학임을 확신했다. 그렇기에 나는 철학을 해야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철학과로 진학을 결심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학부 졸업 논문을 라이헨바흐의 1920년 저작 [상대성 이론과 선험적 지식]에 대해서 쓴 것도 바로 같은 이유에서였다.

 

   나의 석사 논문은 라이헨바흐의 1924년 저작 [상대성 이론의 공리화]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석사 논문을 쓴 이후에도 나는 약간의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이 저작의 의미를 충분히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이후 나는 이 책 전체를 우리말로 번역했고, 1920년대에 쓰인 라이헨바흐의 물리 철학 논문들을 읽었으며, 슐리크와 카시러와 카르납과 같이 그 시대에 활동했던 다른 주요 저자들의 논문들 역시 읽고 분석했다. 나의 박사 논문은 여전히 상대성 이론에 대한 라이헨바흐의 철학적 분석을 초점에 두고 있지만, 그 논의 영역은 석사 논문보다도 더 확장되고 그 논의의 깊이도 더 깊어졌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는 비교적 합리적인 내적 논리가 있고, 나는 이와 같은 내적 논리를 따라온 셈이다.

 

   그렇기에 내 학문적 삶의 여정에서 탁월성과 우수성을 발견하긴 힘들더라도 최소한 내적 일관성을 발견할 수는 있다. 그리고 나의 과거를 보면 나의 미래 또한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어에 미숙하고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라이헨바흐 연구자로서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것이 가치 있다는 나의 신념은 여전히 확고하며, 나는 그저 그 신념에 따라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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