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글 쓰는 이유

강형구 2022. 3. 24. 13:40

   최근 학위 논문 작성 때문에 나 스스로 심리적인 부담을 약간 느꼈던 것 같다. 이렇게 부담감을 가진 상황이 며칠 정도 지속되었고, 그래서 오늘 오전에 나는 문득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약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내 나름대로 대답하는 과정에서 나는 다시금 글을 쓸 동기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중학생 시절부터 계속 글을 썼다. 그때부터 나는 어떤 식으로든 글을 써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우습겠지만 나는 중학교 시절 빈 공책을 사서 거기에 습작 비슷하게 엉망진창인 시와 소설을 썼고 독백조의 산문을 쓰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도 마찬가지다. 나는 과학고등학교에서 공부하긴 했지만, 다른 친구들과 달리 수학과 과학 문제 풀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생각을 했고 글을 읽었으며 나 스스로 계속 글을 썼다. 어떤 경우에는 내 생각 없이 다른 사람이 쓴 멋진 글들을 마냥 베껴 쓰기도 했다. 이렇듯 나는 읽고, 생각하고, 글을 써야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문제를 읽고 문제를 푸는 것은 학생으로서 내가 하는 하나의 의무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인문대학 철학과 학생이었던 대학 시절에도 글쓰기는 계속되었다. 시험과 과제 모두 대부분 글쓰기로 이루어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결코 모범적인 학생이 아니었다. 교수님의 의도에 맞게 적절하게 글쓰기를 한 적이 별로 없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내가 읽고 생각한 것을 나의 글로 쓰는 것이었지, 나의 글이 남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내가 나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무시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전적으로 수긍했다.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쓴 글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 나는 그저 나 자신을 공부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모범생이지 않았던 내가 석사 학위를 받은 것도, 박사과정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어쩌면 교수님들이 나한테 속으신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내가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글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나란 사람에게는 그러한 일말의 가능성이 본질적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라는 사람에게 본질적인 것은, 내가 그저 꾸준히 읽고 생각하고 쓰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최소한 그것이 나에게 가장 확실하다. 읽고 생각하고 쓰는 행위 그 자체가 나를 살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이다.

 

   매일 한 잔 이상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못 살 것 같은 사람이 있다. 물론 그 사람에게 커피를 못 마시게 하면 그가 죽지는 않을 것이지만 매우 고통스러울 것임은 분명하다. 글쓰기를 숨 쉬기, 음식 먹기 등과 비교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것 같다. 오히려 나에게 글쓰기는 엄청난 커피 애호가에 대해 커피가 갖는 관계와도 비슷하다. 나는 어떻게든 글을 써야 심리적인 위안을 얻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내가 왜 이런 사람인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분명하게 아는 것은 글쓰기는 내게 일차적으로 단연 나 자신을 위한 행위라는 것이다. 설혹 그 글이 아주 심각하고 진지한 글이라고 해도 그러하다.

 

   내가 개인적으로 감동을 받는 사실들은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단 2천원만 주고도 1년 동안 쓸 수 있는 두꺼운 노트를 살 수 있다. 요즘은 노트북을 사면 많은 경우 한글 프로그램 패키지를 무료로 설치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형 프린터와 A4 용지(중질지)를 살 수 있다. 도서관에 직접 가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대부분의 책과 논문들을 찾아서 읽을 수 있다. 만약 언어가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들 중 하나라면, 언어적 활동을 통해 기쁨과 위안을 얻는 내가 그다지 별난 종류의 사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언어적 인간인 나에게 글쓰기는 진정 나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한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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