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소박한 연구자의 삶

강형구 2022. 2. 20. 14:49

   철학과에 다녔던 학부 시절 나의 학점은 좋지 않았다. 다른 졸업생들은 성적이 좋아 ‘우등 졸업’ 또는 ‘최우등 졸업’을 했지만 나는 그저 겨우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면 나는 자신감 넘치게 대학원에 지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졸업 성적이 좋지 않았던 나는 ‘과연 될까’ 하는 심정으로 철학과가 아닌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과정에 지원했는데, 운 좋게도 합격했다. 아마 당시에 과학철학 전공 지원자가 거의 없었고, 철학과 조인래 교수님께서 특별히 나의 잠재력을 믿어 주셨기 때문에 선발되지 않았나 싶다.

 

   석사 과정에서 나는 아주 열심히 공부했고 학점도 제법 괜찮았다. 하지만 박사 과정에 입학한 이후 나의 자신감은 많이 떨어졌다. 과연 내가 계속 제대로 연구를 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워졌다. 그래서 나는 휴학을 하고 대한민국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걷는 길인 취업의 길을 택했다. 나는 운 좋게도 6개월 정도의 준비 끝에 공공기관(한국장학재단)에 취업을 했지만, 직장에 다니면서도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직장에 다니면서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았다. 직장 생활과 학업을 병행한 까닭에 학점은 석사 때보다 떨어졌다. 게다가 직장이 서울에서 대구로 이전하게 되어, 부득이하게 충청북도 청주에 있는 한국교원대학교에 학점 교류를 신청하여 6학점을 추가로 이수해야 했다. 나는 이렇듯 힘겨운 과정을 거쳐 겨우 졸업을 위한 학점을 모두 취득할 수 있었다.

 

   박사 과정을 2016년 8월에 수료했지만, 여전히 많은 난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논문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과학사(2011년 1학기), 이론철학(2019년 2학기), 과학철학(2020년 1학기), 전공주제시험(2021년 1학기)을 순서대로 통과했다. 원칙대로라면 수료 후 6년 안에 졸업해야 하며 그래서 나는 2022년 8월에 졸업해야 하지만, 사정이 있을 경우 추가로 졸업연한을 2년 더 연장할 수 있다는 지침이 있다. 그래서 나는 2024년 8월까지 졸업을 하면 되는 상황이다. 만약 올해 가을 학기에 졸업논문이 통과되면 나는 2023년 2월에 졸업하게 되는 셈이다.

 

   만약 학부를 우수하게 졸업하고 석사과정도 훌륭하게 졸업했다면, 아마도 나는 외국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졸업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 교수를 하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공부하는 것을 무척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재능은 없었기에, 한국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계속 박사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의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내가 처한 현실 내에서 계속 연구를 하고 있다. 과학철학 연구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이라, 재능이 그다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나에게는 몇 가지 꿈이 있다. 첫째, 과학철학사 연구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 과학사 과학철학 연구센터(이곳에 과학적 철학 아카이브가 있다)에 방문연구원의 자격으로 1년 이상 머무르며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것이다. 둘째, 비록 가능성은 높지 않더라도 꾸준히 연구 실적을 쌓아가며 국내 대학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노려보는 것이다. 셋째, 앞으로 계속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을 번역하여 내 연구 활동 기간을 통해 그의 중요한 과학철학 저작들 대부분을 우리말로 번역해내는 것이다. 나는 내가 이러한 꿈들을 충분히 꿀 수 있고 또 이 꿈들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비록 나의 재능은 일천하지만 꾸준히 노력한다면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한다.

 

   평생 과학철학을 연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의 운명이다. 대학에 있든 다른 직장에 있든 상관없이 아마 앞으로도 나의 운명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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