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제도 속에서 자유롭게 살기

강형구 2022. 4. 12. 11:43

   나에게는 내 나름의 삶의 기준이 있는데 내 생각에 이 기준은 사회 통념적 기준과는 약간 다른 것 같다. 내가 볼 때 개인과 사회 사이에는 늘 미묘한 긴장이 있다. 나는 사회의 도움 없이는 단 하루도 제대로 살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회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사회적 제도가 나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으며, 늘 사회적 제도 속에는 개인이 숨 쉬며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여지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개인은 어쩔 수 없이 사회와 타협하면서도 적절한 타협 지점을 찾은 후 자신만의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나를 부산의 한 유명한 학원에 보내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린다. 나는 부산 동래구 명륜동에서 살았는데, 명륜동 근처에는 서전학원(구 문봉학원)이라는 유명한 학원이 있었다. 그 학원에서 다른 친구들과 공부(수학, 영어)하면서 나는 세상에 나보다 머리가 똑똑한 친구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정말 똑똑한 친구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가끔 내가 성적 우수자 명단에 포함되기는 했다. 나는 수학보다는 영어에서 더 자주 높은 성적을 받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내가 영어보다는 수학과 물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주입식 교육은 싫었다. 무턱대고 수학 공식이나 물리 공식을 외우는 것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사실 나는 내가 그러는 이유를 잘 알 수 없었다. 그저 나는 그런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과학고등학교에 지원했던 것은, 똑똑한 친구들과 경쟁해서 과연 내가 입학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놀랍게도 나는 과학고등학교 입학에 성공했다. 고등학교에서는 정말 머리가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정말 천재와 같은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과학고등학교의 교육 방식이 싫었다. 많은 분량의 과학 교과목들을 짧은 기간 동안 속성으로 학생들의 머릿속에 집어넣었고, 학생들은 계속 문제 풀이에 매달려야만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훈련 과정이었다. 나의 독특한 성향이 그와 같은 훈련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고등학교 교과 과정을 거의 다 배우게 되는 시점인 2학년 1학기 말에 학교에서 나왔다. 이후 나는 부산 시내의 여러 도서관들을 떠돌아다니며 읽고 싶은 책들을 읽었는데, 내가 가장 자주 갔던 곳은 서면에 있는 부전도서관이었다. 그렇게 자유롭게 살았으니 당연히 모의고사 성적은 형편없었다. 나는 이과가 아니라 문과 시험을 보기로 결정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말까지도 [수학독본]을 읽으며 이과 수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2학년 말에 결국 나는 동래역 근처에 있던 유명한 대입입시학원 [대신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나 혼자서 입시를 준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에게는 내가 소속될 수 있는 사회적 제도 혹은 기관이 필요했다.

 

   [대신학원]에 입학한 직후 나의 모의고사 성적은 대략 360점 정도(400점 만점)였다. 그때 학원에는 과학고등학교에서 나온 친구들이 따로 반을 만들어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나는 일부러 그 반에는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나에 비하면 성적이 아주 잘 나왔고, 나는 이런 상황에는 익숙했기 때문에 그다지 주눅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친구들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꾸준하게 계속 공부하니 모의고사 성적이 조금씩 올랐다. 내 기억에 수학능력시험을 치기 직전의 나의 모의고사 성적은 396점이었다. 당시의 모의고사가 쉬웠다고는 하지만, 만약 내 주변에 똑똑한 다른 친구들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성적을 끌어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주 똑똑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지기도 싫었다.

 

   나에게 상당한 오기와 끈기가 없었다면 서울대학교 입학을 위한 논술시험과 면접시험을 통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도 주변에 나보다 더 똑똑한 친구들을 두고 나름의 경쟁을 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학 시절 주로 도서관에서 지내면서 책들을 읽는 것에 집중했다. 그때도 나는 내가 학문 연구를 하기에는 나의 재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지기 싫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학부 학점이 엉망인 내가 대학원 진학에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기적이었다. 나의 학부 학점은 들락날락했다. 어떤 학기에는 성적이 괜찮아서 장학금도 받았지만, 어떤 학기에는 학점이 곤두박질쳤다. 나의 학부 학점에는 기복이 심했다.

 

   그래도 나는 계속 공부하고 싶었다. 군 복무는 어떻게든 마쳐야 했기에, 나는 강원도 홍천에서 육군 학사장교로 복무하면서도 시간 날 때마다 홍천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글을 쓰는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군 복무 후 대학원에 복학해서는 아주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의외로 성적이 잘 나왔다. 이렇게 성적이 잘 나왔기 때문에 박사과정에도 진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이 또한 나의 행운이지 않았나 싶다. 석사과정의 학점이 좋지 않았다면 교수님들은 나를 박사과정에 들이지 않으셨을 것이다. 나는 석사 입학, 박사 입학 면접시험에서 교수님들께 논리경험주의의 역사를 연구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비록 박사 입학 후 취직을 하고 오랫동안 휴학을 하긴 했지만, 나는 교수님들께 한 약속을 내가 나름대로 계속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교수님들은 이미 나의 약속을 다 잊어버리셨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나의 반에는 나와 친하면서 나보다 수학을 훨씬 더 잘하는, 내가 볼 때 수학 천재인 친구가 있었다. 나의 수학 실력은 감히 그 친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의 친구는 아주 수학을 잘했고, 세계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미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내가 아주 뛰어나지는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지고 싶지 않았다. 오기와 끈기로 끝까지 물고 늘어졌고, 내 나름의 방식으로 계속 공부했다. 나는 지금까지 자유로운 학문적 삶을 추구했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추구했던 자유로운 삶은 늘 특정한 제도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었다. 내가 속한 사회적 제도, 내 주변의 뛰어난 친구들이 없었다면, 아마 오늘의 나 또한 없었을 것이다.

 

   나는 주식 투자도 부동산 투자도 잘하지 못한다. 돈 버는 방법을 모른다. 한국장학재단에 취직했을 때 나를 뽑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장학재단이 서울에서 대구로 이전한다고 했을 때 그에 순순히 따라서 대구로 내려왔다. 대구로 내려온 후 국립대구과학관에서 과학사 과학철학 전공자를 채용한다고 해서 지원했고, 이번에도 나를 뽑아준 것에 감사했다. 나는 집값이 그다지 비싸지 않은 한적한 동네인 테크노폴리스에서 사는 것에 만족한다. 나는 나의 입학을 허가해 준 대학원 교수님들께 미안하면서도 감사드린다. 내가 이렇게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나를 이해해주고 용인해주는 특정한 사회적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국가에서 육아휴직 수당을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내가 1년 동안의 육아휴직을 쓸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국가인 대한민국에 감사한다.

 

   물론 앞으로도 나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특정한 사회적 제도에 속해 있되, 그 제도 안에서 비교적 변두리에서 자유롭게 살려고 한다. 이건 아무래도 나의 기본적인 성향인 것 같다. 나의 아이들은 나와 다른 성향을 갖고 있을 수 있다. 나의 아이들이 나보다 더 머리가 좋고 좀 더 순응적이라면, 나보다 더 모범적이고 우수한 삶을 살게 되겠지. 사실 나는 아이들이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았으면 하고 바란다. 아빠와 너무 비슷한 삶을 사는 것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재미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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