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오직 성실함만을 원리로 삼는다

강형구 2022. 4. 27. 10:01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이들 셋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기 위한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아이들이 하원하는 오후까지는 제법 여유가 생긴다. 이 시간에 나는 설거지, 청소, 빨래 등의 일을 한 후, 책이나 논문을 읽으면서 재야 연구자로서 활동한다. 현재 내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가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므로, 요즘 나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주로 논문 작성 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최근에 수학사 및 리만과 헬름홀츠의 논문들을 읽었으며, 이 내용을 반영하여 상대성 이론의 철학적 배경에 대해 집필하고 있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밤에 아이들이 잠들기 전까지 계속 일을 한다. 옷을 갈아입히고, 간식을 주고, 수시로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고, 씻기고, 논다. 그러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면 집에 달콤한 평화가 찾아온다.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께서 지으신 우리 집의 가훈은 ‘착하고 성실하게 살자’였다. 그런데 살아보니 너무 착하게 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사실 너무 착하게 살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 쉬우므로 결과적으로는 사회가 더 부정하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적당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내가 큰 손해는 보지 않는 범위에서 착하게 살면 된다고 본다. 가훈의 두 번째 부분, 즉 ‘성실하게 살자’에는 크게 동감한다. 적당히 착하게 산다는 것을 전제로 성실하게 살면, 그것은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남에게도 도움이 될 확률이 높다. 실제로 나는 지금까지 비교적 성실하게 살아왔고, 그 성실함이 내 삶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며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결국 부질없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그저 나다. 내가 갑자기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될 수는 없으므로, 부러움이나 질투심을 느낀다면 그것은 그저 쓸데없는 감정 소모에 지나지 않는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 역시 나 자신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일이다. 모든 면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은 없고, 오직 몇몇 측면에서만 나보다 못할 수 있을 뿐이다. 다른 측면에서는 그 사람이 나보다 더 낫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불필요한 감정적 소모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잘나든 못났든 그저 내 상황에 맞춰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게 좋다. 하고자 뜻한 바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해 나가면 조금씩 그 일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것 자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나? 물론 그 일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면 상황은 다르겠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결국 나와 사회 모두에 해를 미치지 않는 일이라면 나에게는 계속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나는 재야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계속 과학철학 연구를 한다. 나는 이 연구가 사회에 해를 미치지 않고 어쩌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기에(그것이 그리 큰 도움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저 계속 성실하게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 삶의 핵심적 원리는 ‘성실함’이다. 물론 다른 학자들로부터 높은 평판을 얻고, 우수한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하고, 우수논문상을 수상하고, 대중적인 명성을 얻어 여러 곳에서 강의 요청을 받는 것은 나로서도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모든 것들은 그저 우발적이고 부수적이며 일종의 행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의 이런 태도가 못 먹는 포도를 쳐다보는 여우와도 같은 것일지 모르겠다. 실제로 그런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와 같은 방법론적 지침에 한 줌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지침은 한 개인을 그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의 다양한 변동들 속에서 아주 오래도록 지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적당히 착한 가운데 아주 성실하게 사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을 나 자신에게 바라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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