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문재인 대통령을 기억한다

강형구 2022. 4. 29. 14:10

   나같이 정치를 잘 모르고 정치에 관심도 별로 없는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을 기억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에 방송된 문재인 대통령과 손석희 앵커의 대담을 본 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나의 기억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기 직전 제작되었던, 그의 재임 5년을 되돌아보는 5부작 다큐멘터리를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후 뒤늦게 그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았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비슷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1주일 정도 계속 울었다. 쉬지 않고 계속 울었던 것은 아니고, 살다 보면 어김없이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나서 하루에 꼭 한 번 이상은 울었다. 당시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슬픔은 아주 감정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문재인을 보면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극도로 차분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송된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상황을 수습하고 언론에 대응하는 문재인의 모습은 실로 침착했다. 나는 그의 그와 같은 비현실적인 침착함에 약간의 놀라움을 느꼈다.

 

   그토록 강렬하고 감정적인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서 눈에 띄게 사그라들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매일의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우리는 늘 그랬듯 하루하루 살기 바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침착하고 정치에는 욕심이 없어 보이던 문재인이 야당에 복귀해 새로운 대권 주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볼 때 문재인에게는 그것이 정치적 야망 때문이 아니라 일종의 의무감 때문인 것 같았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을 때 내가 느꼈던 안타까움, 상실감, 걱정스러움이 아직 기억난다. 이후 세월호 침몰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과 사고는 늘 일어나는 것이지만, 세월호가 침몰하게 된 이유와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국가가 진행한 재난 대응 프로세스는 참담한 것이었다. 이후 최순실과 관련된 언론 보도를 보면서도 너무 황당했다. 내가 사는 이 나라의 현실이 너무 부끄러웠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문재인이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진중하고 꼿꼿한 선비와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문재인 대통령이 재직한 5년 동안 큰 걱정 없이 잘 지냈다고 기억한다. 물론 실망스러운 내용이 없지는 않다. 남북관계가 더 개선되어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료되고 더 평화로운 나라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동산 대책도 그랬다. 필사적으로 집값을 잡으려는 정부의 노력은 가상했지만, 규제 위주의 강경한 정공법으로는 결코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외의 많은 것들은 이전 정권에서보다 더 좋아졌다. 나는 지난 5년간 더 많은 사람을 위해, 더 약한 사람을 위해 각종 제도와 법이 새로 만들어지고 개선되었다고 본다.

 

   나는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훌륭한 정치인은 매우 존경한다. 왜냐하면 정치라는 일이 이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많은 사람을 위한 일이고, 똑똑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무엇보다 정의로운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학자보다는 정치인을 더 존경한다. 학문과 정치는 그 차원이 다른 것 같다. 학문은 정치라는 배경 속에서만 가능하다. 내 생각에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학문보다는 정치가 더 우선이다. 내게 문재인 대통령은 존경스러운 정치인이다. 어쩌면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대통령을 존경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나의 이 존경심은 진심이다. 당연히 나는 손석희 앵커보다는 문재인 대통령을 더 존경한다. 손석희 앵커가 문재인 대통령보다 키가 더 크고 더 잘생겼으며 더 말을 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해 온 일이 언론인 손석희의 일보다는 훨씬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퇴임 후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를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간절히 기원한다. 그가 노무현 대통령처럼 나를 울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 눈물이 줄어들었긴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비극적인 일을 겪는다면 울지 않을 것이라 보장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후 제2, 제3의 문재인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가 우리 역사 속 고독한 인물로 남지 않고 그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많이 등장해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