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부산에서

강형구 2017. 6. 18. 15:44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아내, 딸 지윤이와 함께 부산으로 왔다. 오늘은 나의 고조할아버지(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새벽 5시 반쯤 대구 테크노폴리스에서 출발해서 아침 7시쯤 도착했다. 도착해서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오래간만에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음식을 먹으니 참 맛이 있었다. 식사 후에 나는 씻고 면도를 한 다음, 동래백화점 롯데시네마에 가서 ‘악녀’라는 영화를 조조할인으로 보고 왔다. 근래에 여러 경로를 통해 이 영화에 대한 소개를 자주 보면서 흥미가 생겨서 영화관을 찾았는데, 기대했던 것만큼 재미있는 영화였다. 영화 내용이 잔인하고 엽기적이었지만,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운 고난도의 액션 장면들이 많이 등장했다.

  

   오늘은 전국적으로 폭염주의보가 발령될 만큼 더운 날이다. 영화를 본 후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잠시 쉬다가, 동네에 있는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고 왔다. 저녁에 제사를 지내고 난 뒤에는 다시 대구 테크노폴리스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제사는 저녁 6시쯤 지낼 예정이다. 대구에 돌아가면 밤 10시가 넘어 있을 것이다. 내일부터는 다시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한다. 회사에는 나의 자리가 있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어느덧 나의 첫 직장인 한국장학재단에서 일을 한 지 5년 5개월이 되었다. 회사일이라고는 전혀 모르던 나는 일을 하며 실수도 많이 했다. 많은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나름대로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 이 자리에까지 왔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나의 꿈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나는 적어도 나에게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제법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들을 두루 사귀면서 원만하게 지내는 일,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는 일, 난감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지키는 일, 손윗사람들의 비위를 적절하게 잘 맞춰주는 일, 아랫사람들을 잘 챙기는 일 등등이 나에게는 참 쉽지 않았다. 나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진지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지만, 융통성이 부족하고 일처리 능력이 서툴렀으며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지도 못했다. 직장생활을 6년째 하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나는 여러모로 부족하고 불완전한 사람이다. 평범하고 무난하게 살고자 하는 나의 목표를 아직까지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부산에서 나는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을 본다. 부모님 두 분 다 예순을 넘기셨다. 어느덧 나에게도 아내가 생기고 딸이 생겼다. 나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한 가족의 가장이 된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이지만, 나는 어떤 측면에서 아버지와 다르고 어머니와 다르다. 나에게는 내게 주어진 고유한 삶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된 이 사회 속에서, 나 역시 부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부대껴가며 삶을 살아간다. 내가 매월 이 사회로부터 월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고 놀랍게 여겨진다. 나는 그저 순간순간 내게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할 뿐이다. 월급을 통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입하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나는 앞으로 좀 더 무난하고 반듯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두루 화목하게 잘 지내고, 겸손하며,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으로서 생활하고 싶다. 옛 친구들과 가끔씩 연락하면서 안부를 묻고, 친구들이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는 도와주고,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친구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함께 사는 이웃들에게 다정하게 인사할 수 있고, 내가 사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나이 서른 여섯인데도 아직까지 이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 약간 부끄럽지만, 그래도 앞으로 계속 무난하고 반듯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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