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행정원에서 연구원으로

강형구 2017. 7. 6. 17:14

 

   나는 대학원 박사과정 1학기를 마친 후, 20117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취직준비를 했다. 당시에 나는 단순한 논리로 취직준비를 했다. 나는 기업의 사적 이익보다는 공공의 복리를 위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공무원이 되거나 공공기관의 직원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나는 7급 공무원 시험 준비와 공공기관 입사 준비를 병행했다. 내가 취직 준비할 당시에 공공기관에서는 필기시험으로 대부분 경제, 경영, 법학 등을 보았다. 그래서 철학을 전공한 나는 번번이 공공기관 입사 필기시험에서 떨어졌다. 간혹 면접시험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의 학부전공인 철학은 면접장에서 불리하게 작용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시도에 시도를 거듭하여, 2012116일부로 교육부 산하 준정부기관인 한국장학재단에 정규직 행정직원으로 입사했다. 서류시험, 필기시험, 면접시험을 거쳐서 최종 합격한 것이었다. 필기시험에서는 일반상식 및 경제상식 객관식 문제들을 풀었고, 경제논술시험을 치렀다. 면접시험 때에는 특별히 두각을 드러내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진지한 태도를 보이고자 노력했다. 나는 한국장학재단에서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재능봉사 캠프 사업을 운영했고, 기획재정부에서 5개월 간 현장근무를 했고, 이후 재단에 복귀하여 기관 및 부서 성과평가 업무를 담당했다. 이 업무들은 충분히 의미 있고 좋은 일들이었지만, 이 업무들을 하면서 나의 전공인 과학사·과학철학을 살리기는 힘들었다.

  

   아내는 대학원에서 나와 비슷한 전공을 했다. 다만 아내가 나와 달랐던 것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게 있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석사과정 졸업 후에 국내의 과학관(science museum)에서 일하고 싶어 했다. 아내는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모집한다는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직접 운영하는 책임운영기관인 국립과천과학관의 정규직 직원들은 거의 모두 공무원들이다. 내가 한국장학재단에 입사를 했던 2012년에 아내는 과천과학관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일했고, 아내는 과천과학관에서의 근무 경력을 살려 2014년에 국립대구과학관에 정규직 연구원으로 채용되었다. 이후 나는 가끔씩 아내에게 당신은 자아실현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아내가 일하는 기관에서는 아내의 전공을 살릴 수 있었고, 아내는 아주 오래전부터 과학관에서 일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과학사·과학철학인 나의 전공을 살리면서 과학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우리 가족은 이미 대구시 달성군 유가면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기 때문에, 이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일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구시 달성군 근방에 위치한 과학 관련 공공기관을 찾아보았다. 아내가 근무하고 있는 국립대구과학관으로 이직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고려했었지만, 과학관에서는 철학 전공자나 과학사·과학철학 전공자를 채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원할 수가 없었다. 다른 공공기관으로 이직한다고 하더라도 그 곳에서 행정업무를 하는 것은 한국장학재단에서 근무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별다른 일이 없을 경우 계속 한국장학재단에서 근무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가 올해 5월에 찾아왔다. 대구과학관에서 과학기술자료의 수집, 보존, 연구를 위해서 과학사·과학철학 전공자(석사이상)를 채용하기 위한 공고를 냈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와의 상의 끝에 지원서를 제출했고, 서류심사-필기시험-면접시험을 거쳐서 최종 합격했다. 나는 올해 724일부터 국립대구과학관에서 행정원이 아닌 연구원으로 근무할 예정이다. 한국장학재단에서는 717일자로 퇴직한다. 새로운 직장에서 근무하기 전에 아내와 나는 인근에 있는 이웃나라인 일본의 도쿄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나는 우리나라에 비해 자연과학이 발전한 일본의 과학관을 탐방해보고 싶었다. 아내와 나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45일 일정으로 일본에 다녀올 예정이다.

  

   나는 2012116일부터 2017717일까지, 56개월 동안 한국장학재단에서 일하면서 행정원으로서 업무경력을 쌓았다. 이제는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연구원으로서 업무경력을 쌓게 될 것이다. 나의 전공과 좀 더 관련이 있는 일을 하게 되어서 나로서는 다행이지만,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며 친숙해진 사람들과 이별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새로운 일을 하기로 결정한 이상, 나에게는 나의 선택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아마도 이 결정이 나의 삶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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