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의지의 문제

강형구 2017. 7. 21. 10:33

 

   이제 나는 나 스스로 변화시키기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나라는 존재는 이제 이 세상에서 변화시키기 어려운, 어느 정도 고정된 하나의 사실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내 삶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나는 이미 학교를 마쳤고, 군대를 다녀왔으며, 취직을 했고,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다. 나의 머리는 점점 빠지고 있고,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내가 이혼을 하고 다시 결혼을 할 가능성,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에 갈 가능성 등등은 아주 적다. 그만큼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내게는 참 많은 행운이 따랐던 것 같다. 이는 달리 말하면 내가 삶을 살아오면서 나의 능력에 비해 좋은 성과를 얻었음을 의미한다. 우선 나는 나의 능력에 비해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학원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나는 공부에 관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두각을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부모님 덕택이다. 그리고 내가 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별도의 입학시험을 치르지 않았고 내신성적 평가와 면접시험만 치렀다. 물론 나는 중학교 시절에 과학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했지만, 마침 내가 입학하는 년도부터 입시제도가 바뀌었다. 만약 과학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면 나는 과학고에 입학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과학고에서 나는 두 가지 문제에 부딪혔다. 하나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내가 과학 공부를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과학보다는 과학의 역사와 사상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과학고를 그만두고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치렀다. 검정고시를 치른 것은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왜냐하면 검정고시 출신의 경우 고등학교 내신성적을 수학능력시험 성적을 토대로 산정했기 때문이다. 내가 치른 2001년 대입 수학능력시험에서 나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결과적으로 나는 내신성적 산정에서 전혀 불리하지 않았다. 이 또한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이러한 행운으로 인해 나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내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할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그저 나에게 행운이 따랐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믿는 나는 이 행운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생각한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는 특정한 일관성이 있다. 그러한 일관성이란 원칙에 맞게 진실하고 솔직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나는 공부를 아주 우직하게 했다. 다른 학생들과의 경쟁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 과학의 역사와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나는 바보처럼 시험공부 대신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할 때도 나는 그해 2월까지는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읽었고, 2월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험을 준비했다. 입시 준비 초반에는 모의고사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그저 열심히 노력하면 성적이 오르리라 생각했고, 최종 성적에 맞추어서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나는 도서관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관한 책들을 찾아서 읽었는데, 이는 학교의 수업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나의 대학성적이 말해주는 것처럼, 나는 결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 겨우 졸업 가능한 성적을 얻었을 뿐이다. 다만 나는 지금의 대학생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학점을 높이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나는 4년 만에 졸업을 했다. 그리고 나는 비록 전액은 아니지만 성적우수 장학금도 2번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단순한 원칙에 따라 살았기 때문에 내 삶에 행운이 따라주지 않았나 싶다.

  

   나는 육군장교로 복무했다. 내가 대학에 재학하고 있을 당시 선배들을 비롯한 많은 남학생들이 공군장교로 지원했고, 어떤 선배는 공군장교 시험에서 떨어져서 다시 시험에 응시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공군장교가 육군장교에 비해 편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굳이 공군장교에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큰 고민 없이 육군장교에 지원해서 합격했다. 당시 육군장교 경쟁률은 공군장교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았고, 그랬기에 수월하게 합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또한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나는 복무시절 차곡차곡 돈을 모아 전역할 무렵에는 대학원 생활에 필요한 숙소를 마련할 수 있었고, 대학원에서는 등록금을 충당할 수 있는 장학금을 받았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이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잘하는 다른 친구들에 대해 열등감을 느꼈고 나의 부족한 능력에 대해 좌절감을 느꼈다. 대학교 시절에도 다른 학생들에 대해 지적인 열등감을 느꼈고, 인문학 특히 철학 전공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 때문에 열등감을 느꼈다. 군대에서는 철학 전공자인 통신장교로서 내 역할을 제대로 다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고, 대학원에서는 논리경험주의를 재조명하고자 하는 나의 뜻이 다른 동료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어려움을 겪었다. 박사과정을 휴학하고 취직준비를 했던 것 역시 나에게는 도전이었고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이러한 여러 어려움들 속에서도 나는 우직한 방식으로 나의 길을 걸어갔고, 그랬기에 나에게 분에 넘치는 행운들이 따랐던 것 같다.

  

   내가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얻는 결론은, 삶은 능력과 재능의 문제라기보다는 의지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에게는 많은 행운들이 따랐다.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부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났고,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행운들이 나의 삶을 밝혀주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할 때 내 삶을 지켜준 것은 바로 삶을 특정한 방식으로 살고자 하는 나의 의지였다. 나는 반칙하지 않고 정직한 방식으로 살고자 노력했고, 과학의 역사와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에는 주변의 사람들이 이 학문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관계없이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계속 공부해나갔다. 나는 다른 학생들처럼 시류에 맞춰 법학이나 의학, 경제학, 경영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시류에 맞춰 공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공부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삶을 선택했다.

  

   내가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는지는 나와 1주일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내보면 잘 알 수 있다. 나는 아주 평범한 수준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다소 융통성이 없고, 몇몇 측면에서는 아주 멍청하다. 나는 나의 평범한 생활을 가능하도록 해주는 우리 사회의 각종 제도적 장치들에 대해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마트에 가서 생활에 필요한 온갖 물건들을 살 수 있다는 사실, 음식점에 방문해서 맛있는 음식들을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옷가게에 가서 예쁘고 튼튼한 옷들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우리 사회가 발전시켜 운영하고 있는 온갖 사회제도들을 일종의 기적과 같이 생각한다.

  

   나는 강인한 의지를 갖고 지금까지의 삶을 살아왔고, 그 결과 지금의 내가 되었다. 36년의 세월을 통해 나라는 사람의 삶의 방향이 상당부분 결정되었고, 향후에 내 삶이 크게 변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은 내가 우리 사회에 할 수 있는 기여를 충분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학에서 과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했으며, 육군장교로서의 경험을 갖고 있고, 결혼을 해서 한 아이의 아버지인 나는, 지금까지 내가 얻은 경험들을 살려서 우리 사회가 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내 나름대로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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