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과학철학자 육성계획

강형구 2017. 7. 22. 18:05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사회에서 한국문화의 영향을 받고 자라난 사람들의 지적 능력은 평균 이상이다. 이렇듯 뛰어난 역량을 가진 한국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분야는 어떤 분야들인가? 2017년 현재 한국 사람들은 축구, 골프 등 운동경기에서, 음악과 영화와 같은 예술분야 등 몇몇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광복 직후부터 이 분야들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운동경기와 예술을 즐겼고 이 활동에 직접 참여했다.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통해 참여자들의 역량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점차 개발되었고, 이제는 이러한 분야들의 경우 한국에서 인정받으면 세계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형성되어 있다.

  

   내가 전공한 과학철학에서도 위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말해, 한국에서 과학철학이라는 분야가 활성화되어, 한국에서 과학철학으로 인정을 받으면 세계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형성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과학철학이라는 학문을 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적인 과학철학자가 한국에서 토종으로 양성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50년 이상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지금도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과학철학자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조인래 교수님, 케임브리지대학교 장하석 교수님, 경희대학교 최성호 교수님 등이 세계적인 과학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자들을 한국 토종의 과학철학자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외국에서 과학철학을 공부하여 학위를 취득했다 하더라도, 한국에 돌아와 독특한 과학철학 전통을 형성하는 것은 한국에 과학철학을 뿌리내리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러한 전통을 한국에 만든 학자가 있는지는 다소 의심스럽다. 물론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과학철학자들이 나름대로 전통을 형성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과학철학과 관련하여 한국의 성숙 정도가 여전히 서양의 중세시대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향후 과학철학의 많은 원전들이 일관성 있게 한국어로 번역되어야 하고,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과학철학이라는 활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만 한국의 과학철학 문화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과학철학 종사자들은 어떤 활동에 참여해야 한국에서 자생적인 과학철학자를 육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모든 학문 분야가 그렇듯, 한 분야에서 정통 교과서(텍스트)가 확립되고 그 정통 교과서를 통해서 확실하게 그 학문 분야를 통달하는 사람들이 등장해야 그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가 탄생할 수 있다. 오늘날의 학생들이 과학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텍스트를 집중해서 읽을 수는 없다. 시중에 대학생 혹은 일반인을 위한 과학철학 교재들이 다수 나와 있다. 하지만 이 교재들을 보면 과학철학이란 특별한 훈련 없이 몇몇 주제들에 대해 평소보다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기만 하면 할 수 있는 철학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이는 위험한 가능성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과학철학의 정통 교과서를 쓴 사람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사람은 논리경험주의자인 독일의 과학철학자 한스 라이헨바흐(Hans Reichenbach, 1891~1953). 물론 이러한 나의 판단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또한 나는 이러한 사람들을 설득하고자 시도하지도 않겠다. 다만 나는 라이헨바흐가 과학철학을 대표하는 학자임을 보여주는 몇몇 예들을 들어보겠다. 라이헨바흐는 과학철학에 관한 거의 모든 주요 주제들에 대해 저작을 남겼다. 그는 기호논리학과 확률에 관한 책을 썼고, 과학 법칙에 관한 책을 썼고, 인식론 일반에 대한 책을 썼다. 또한 그는 20세기 전반기의 주요 물리학 이론들에 대한 책을 썼다. 그는 상대성이론에 대해서, 양자역학에 대해서, 통계역학에 대해서 썼다. 대부분의 과학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저술을 남겼다는 것은, 라이헨바흐의 철학을 완전히 소화하는 것이 보다 더 발전된 과학철학을 하기 위한 좋은 토대가 될 것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라이헨바흐의 철학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까? 이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우선 중세시대의 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라이헨바흐가 쓴 저술들을 한국어로 번역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저술들을 철저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영어로 된 책은 영어로 읽어야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어로 사고한다. 영어를 읽으면서도 한국어를 사용해서 사고하는 사람들이 바로 한국인이다. 영어로 읽었다고 해도, 이를 한국어로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제대로 읽은 것이다. 물론 영어로 읽어서 영어로 잘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잘 읽은 것이나,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한국인으로서 한국 문화에 기여하기 어렵다. 어찌됐든 한국에서는 한국어를 통해서 상호 간에 의사소통을 하며 문장들의 뜻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라이헨바흐가 쓴 대부분의 저술들이 한국어로 번역되고 나면, 이 저술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의 차원을 넘어서서 이 철학의 세밀한 부분들을 다시 검토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은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좀 더 완전히 소화된다. 이러한 비판 작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 작업을 가능하게 할 공간과 사람들이 필요하다. 대학에서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한 국가에서는 대학이라는 공간에 뛰어난 지적 재능을 가진 젊은이들이 밀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과학철학이라는 학문이 유능한 젊은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과학철학이 유능한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에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과학철학은 최첨단의 새로운 과학이론이 등장하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주 어려울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 과학철학이 실용적인 차원에서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영역은 과학교육 영역과 과학에 대한 교양수준의 이해 영역이다. 수학, 물리, 화학 등의 과학 분야를 가르치는 예비 과학교사들은 과학철학을 통해 과학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또한 예비 과학교사들은 과학철학을 통해 학생들에게 과학이론의 발전 과정 및 주요 특징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을 과학교육과 접목시킬 수 있을까?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과학교육계에서 라카토슈의 과학철학을 상당부분 활용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을 과학교육의 영역에 이식하는 것은 실현가능한 과제일 것이다.

  

   또한 과학철학은 교양 있는 일반 시민들이 현대 과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할 수 있고, 이때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 역시 이러한 작업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은 과학교사가 되려고 하는 젊은이들이나, 일반 시민들에게 과학의 의미를 설명하는 역할을 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이 철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 수는 있겠으나, 나는 그러한 가능성이 크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학의 강단철학은 과학철학과 그다지 친밀하지 못했다. 갈릴레오나 데카르트는 대학 소속이 아니었다. 헬름홀츠, 푸앵카레, 아인슈타인, 라이헨바흐 역시 대학의 강단철학자가 아니었다. 과학철학은 자연과 과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호응 속에서 성장한다. 과학철학이 대학 내에서 전문 철학 분야로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은 승산이 매우 낮은 게임에 승부를 거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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