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멍청하고 우직한 자

강형구 2017. 8. 15. 10:24

 

   돌이켜보면 나는 세상을 살아오며 다른 사람들을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온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늘 나의 목표는 다른 사람들을 이기는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 만큼만 하는 것이었다. 다만 나에게는 무슨 일을 하든지 별 생각 없이 우직하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 우직함으로 나는 운동을 했고, 책을 읽었고, 각종 문제를 풀었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나았던 것이 있었다면 이는 이러한 나의 우직함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나는 삶에 대한 내 고유의 기준을 갖고 있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나의 초중등교육 교육비를 아꼈다. 나는 학원에 많이 다니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을 했다. 만약 나의 초중등교육 교육비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있다면, 아마도 내가 소비한 교육비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나의 초중등교육을 위해 소요된 비용이 평균 수준 또는 그 이하이었기를 바란다.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과도한 사교육비를 내면서 나 스스로를 교육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내가 매달 낸 학원비가 88천원이었다는 것은 지금도 나를 만족스럽게 한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나이 때 썼던 교육비는 기껏해야 106만원 정도가 되는 셈이다.

  

   나는 국립대학교의 인문대학 출신이다. 사실 내가 우리나라의 국립대학교 중에서 서울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참 운이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서 직접 생활을 하는 나에게는 서울대학교라는 이름이 중요하기보다는 나라는 사람이 국립대학교의 인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국립대학인데다 인문대학이라 대학 등록금이 저렴하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내가 공부하는 것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는 것이었고, 대학에서 공부를 끝내고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었다. 대학 입학 후 1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나의 공부에서 의미를 찾는 것과 사회에서 나의 자리를 찾는 것에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만큼만 하는 것을 목표로 삼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일관되고 우직하게 추구하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 내 삶을 인도해 준 방침이 아닐까 생각한다. 5년 반 동안 한국장학재단에서의 업무를 끝내고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게 된 지금, 나에게는 앞으로 해나가야 일이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평범하고 아늑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이다. 나는 부유하고 멋들어진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욕심 부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욕심을 가지면 돈을 많이 벌려고 하게 되고, 승진을 하려는 강한 야망을 갖게 되며, 결과적으로 이런 의지와 야망 때문에 삶의 많은 것들이 희생된다. 나는 지금 내가 받는 급여에 대해서 만족할 것이고, 나의 급여에 대응하는 소박한 삶에 만족할 것이다. 다만 나는 아내, 아이와 함께 평온하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둘째는 과학관 학예사(curator)로서의 나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일이다. 나는 과학사, 자연사, 박물관학, 전시기획에 대한 깊은 학식이 있고, 이러한 학식을 바탕으로 과학관의 전시를 운영해나가는 사람이 바로 과학관 학예사라고 생각한다. 나는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 나의 업무에 임하면서 이와 같은 과학관 학예사로서의 역량을 길러나갈 것이다. 셋째는 아마추어 과학철학자로서의 나의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내가 대학이 아니라 일반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상, 과학철학에 대학의 전문적인 학자들만큼의 기여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마추어 과학철학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여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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