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다시 철학을 공부한다면

강형구 2017. 8. 27. 17:42

 

   철학이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나는 학창시절 철학을 접하고 철학이 제시하는 근본적인 질문들에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기로 선택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똑똑한 결정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만약 나에게 다시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나는 철학을 전공으로 삼기보다는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자연과학을 전공으로 삼겠다. 수학이나 물리학을 심도 있게 공부하면서 철학은 부전공이나 복수전공으로 공부할 것이다. 철학이 곧 개별과학의 역할을 했던 시대가 있긴 했지만 이제는 그러한 시대가 아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는 나의 자연과학적 재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나라는 사람은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이미 알려져 있는 이론들을 학습하는 것에 더 적합하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수학과나 물리학과가 아니라 수학교육과나 물리교육과에 진학했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만약 문-이과 교차지원을 해서 수학교육과나 물리교육과에 진학했다면, 아마도 나는 서울대학교가 아닌 다른 4년제 대학교에 진학했으리라. 물론 나는 4년 장학금을 받는다는 전제로 진학했을 것이다. 나는 부모님에게 대학 등록금을 의지한다는 사실을 불편하게 여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졸업생이라는 꼬리표는 대학 졸업 후 나를 계속 따라다니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꼬리표를 자랑스럽게 여길 때보다는 불편하게 여길 때가 많았다. 만약 내가 정말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이었다면, 그래서 내가 서울대학교 졸업생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이 합당한 사람이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서울대학교 졸업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멍청하고 미숙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나의 출신 대학을 변경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나는 나에게 붙여진 이 꼬리표를 일종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기로 했다. 내가 진정으로 말하지만 나는 이 꼬리표로부터 자부심보다는 부담스러움을 더 느꼈다. 만약 내게 다시 한 번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서울대학교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철학과를 선택한 것, 서울대학교를 선택한 것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운명이다. 내가 나의 아내를 사랑한 것, 아내와 결혼해서 딸 지윤이를 얻게 된 것이 나의 운명인 것처럼 말이다. 철학과를 졸업한 것은 오랜 기간 동안 내 삶의 부담으로 나를 따라다녔다. 취업을 준비할 때 나의 전공은 내게 큰 도움을 주지 못했고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했다. 그렇지만 취업에 성공한 지금 나는 오히려 내가 철학을 전공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는 철학에 등장하는 근본적인 논의들을 읽어보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성향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나는 박사학위 논문자격시험 준비를 위해 인식론과 관련한 논의들을 읽고 있는데, 이해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아주 흥미롭다.

  

   만약 내가 수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했다면 자연에 대한 철학을 좀 더 깊이 파고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공부는 나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나라에 훌륭한 수학자와 물리학자 선생님들이 다수 있어, 나는 이 선생님들이 쓴 책들을 읽으며 나의 지적인 욕구를 채울 수 있다. 사실 나는 내가 좀 더 똑똑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자주 생각하지만, 지적 재능은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요소인 것 같다. 나는 그저 애호가로서 수학, 물리학, 철학을 공부하는 것에 만족한다.

  

   다시 철학을 공부한다면, 나는 자연과학을 전공으로 삼아 공부하고 철학은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으로 공부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철학을 공부한다고 해도 철학을 통해 내가 큰 만족을 얻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철학은 나라는 인간에게 아주 큰 만족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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