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가을이 왔다

강형구 2017. 10. 14. 14:13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하다. 무더웠던 여름이 어느덧 지나간 듯하다. 올해 여름부터 지금까지 정신적 긴장의 연속이 이어졌다. 다니던 직장의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직장에 다닐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내가 새로운 직장에서 일한 지도 이제 거의 3개월이 되어간다. 이제는 집 근처에 있는 직장으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비가 올 때는 차를 몰아 출근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얼마 전에 전세가 아닌 온전한 우리의 집을 구매했다. 구매한 우리 집에는 내년 5월까지 기존의 세입자가 살기로 예정되어 있어, 우리도 지금 전세로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내년 5월까지 머무르기로 했다. 내년 5월 초부터 우리는 진정한 우리의 집에서 살게 될 것이다. 10개월이 갓 넘은 나의 딸은 잘 걸어 다니고 있다. 육아휴직 중인 아내는 열심히 아이를 돌보고 있는 중이다. 우리 가족은 부유하지는 않지만 충실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새로운 직장에서는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원칙이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고, 저녁 때 시간 외로 근무하는 것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하면 된다. 나는 이번 학기에 KMOOC 사이트에서 성균관대학교 수학과 채영도 교수님의 미적분학 강의를 수강하고 있으며, 한 출판사와 계약하여 리처드 뮬러라는 미국 실험물리학자가 집필한 책 [시간의 물리학(Now: Physics of Time)]을 번역하고 있다. 여유 있게 출근할 수 있고 퇴근 후에는 여유 시간이 많지만, 강의를 수강하고 책을 번역하다 보면 시간은 의외로 참 빨리 지나간다.

  

   나는 2014년부터 번역을 하고 있다. 번역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로부터 비롯되었다. 몇 년 전에 대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가 출판사에 취직을 한 후, 대학원 동문이었던 나에게 책 번역을 의뢰했다. 이때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승낙했다. 나는 번역을 통해서 내가 전공한 학문인 과학사 과학철학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금전적인 욕심은 거의 없었고, 실제로 번역을 통해 수입은 거의 얻지 못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원자와 우주]가 출판된다면 이 책은 나의 세 번째 번역서가 될 것이다. 아마도 내년에는 [시간의 물리학]이 출판될 것이다. 앞으로도 1년에 최소한 1권의 책을 번역하고 싶다.

  

   나는 약 1개월 전부터 주중에 매일 25분씩 화상 영어회화를 하고 있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어에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서 연습한다.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씩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 그런 경우에 낯설거나 당혹스럽지 않도록 준비한다는 의미도 있다. 대개 내가 대화하는 사람들은 필리핀 사람들이다. 미국이나 영국 출신의 본토 사람들과 대화하려면 추가적인 비용을 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그저 다른 사람과 그럭저럭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면 된다.

  

   10대의 건강 상태와 20대의 건강 상태가 다르듯,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몸의 상태가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예전보다 음식을 적게 먹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고,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나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시력도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 이제는 정말로 전체적으로 건강관리를 조금씩 해야 할 것 같다. 머리도 계속 조금씩 빠지고 있어, 거리에 나가면 누구나 다 나를 한 명의 평범한 아저씨로 볼 것이다. 나는 내 나이와 건강 변화를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직장을 옮기는 것과 아이를 키우는 것에서 느꼈던 낯섦과 힘듦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그 강도가 약해지고 있다. 선선한 가을 날씨를 편안하게 즐기면서 나는 가족들과 주말의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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