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30대 중반 가장의 삶

강형구 2017. 11. 11. 12:44

 

   가장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누구나 나와 비슷할 것이다. 나는 대학원생인 30살 때, 비록 다른 사람들보다 다소 출발이 늦긴 했지만 앞으로 직장인으로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자 결심했다. 당시 나의 곁에는 여자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가 있었고, 나는 아내와 함께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나는 31살이 되던 해인 2012116일부터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첫 직장에서 56개월 동안 일하면서 아내와 결혼을 했고, 서울에서 대구로 거주지를 옮겼으며, 형식적으로나마 박사과정 학점 이수를 끝냈고, 아내와 나 사이에는 예쁜 딸이 태어났다. 56개월 이후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 근처로 직장을 옮겼다. 나와 아내는 같은 직장에서 일한다. 우리 둘은 모두 대학원에서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공부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훗날 나와 같은 공부를 한 여성과 결혼하기를 바랐고, 다행히도 이 바람이 이루어졌다. 새로 옮긴 직장에서 나는 대학원 전공을 십분 살리면서 일하고 있다.

  

   118일인 수요일에는 하루 휴가를 쓰고 딸아이 돌 사진을 촬영하러 대구 시내에 나갔다. 오전 내내 돌 사진 촬영을 위해서 시간을 썼다. 나는 직장에서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혼자 살던 예전처럼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가 어렵다. 아내를 위해서, 딸아이를 위해서 시간을 써야 한다. 설거지를 하고, 집 청소를 하고, 아이와 함께 논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가면 새로운 종류의 일들이 시작되는 셈이다. 나는 이 새로운 일들을 가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로 받아들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한다.

  

   아마도 나는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정년까지 일하게 될 것이다. 평소에 내가 선호하는 삶의 유형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삶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의 태도를 유지하여, 초반에 힘을 빼기보다는 느긋한 마음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일을 해나갈 것이다. 원칙과 규정에 맞게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해 나가되, 너무 무리하게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직장 내에서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도 않을 것이다. 겸손하고 여유 있는 태도로 업무에 임할 것이고, 다른 동료들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 줄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즐거운 마음으로 즐기면서 일을 해 나가고 싶다.

  

   올해 안에 내가 예전에 번역했던 한스 라이헨바흐(Hans Reichenbach)의 책 [원자와 우주]가 출판될 예정이다. 번역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번역이라는 작업 자체가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초벌 번역이 끝난 다음에는 다른 분들의 도움을 거쳐서 번역 원고를 여러 번 수정해야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고, 이제는 책 출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원자와 우주]는 예전에 번역했던 책들인 [상대성 이론과 선험적 지식],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보다는 좀 더 높은 품질의 번역서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앞으로 번역해야 하는 책들은 많다. 우선, 지금은 대학원 후배이자 현재 한 출판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가 부탁한 책인 [시간의 물리학]의 번역을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의 번역이 끝나면 내 본연의 일인 라이헨바흐의 책 번역으로 돌아갈 것이다.  [상대성 이론의 공리화], [경험과 예측], [기호논리학 기초], [확률론], [법칙, 양상, 반사실적 조건문], [시간의 방향]이 내가 앞으로 번역해야 하는 라이헨바흐의 책들이다. 나는 최소한 이 책들을 번역한 다음에 박사학위 논문을 쓰려고 계획하고 있다. 마치 내가 [상대성 이론과 선험적 지식]을 번역한 다음에 학사학위 논문을 썼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내년에도 대구과학고등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된다면, 나는 라이헨바흐의 책들을 사용하여 과학철학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머리가 뛰어나므로, 라이헨바흐의 책들을 사용해도 충분히 수업을 따라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라이헨바흐의 작업을 중심에 두고 나의 연구, 강의 작업을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이는 라이헨바흐의 철학이 절대적으로 옳은 철학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생각할 때 그의 철학은 아주 뛰어난 철학인 반면 나 자신의 역량은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그의 철학을 연구하는 데 나의 역량을 집중해야만 내 삶을 통해서 어느 정도 가시적인 철학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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