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과사철 졸업생

강형구 2017. 6. 3. 21:39

 

   나는 학부는 철학과를 졸업했고, 대학원은 과사철을 졸업했다. ‘과사철은 서울대학교 자연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물을 수 있다. “혹시 과사철 출신인가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저는 과사철 출신입니다. 과학철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나는 비록 과학철학으로 학위를 받았지만, 과사철 출신이라면 세부전공과는 상관없이 과학사와 과학철학 모두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나의 전공을 활용할 기회가 거의 없다. 회사에서 내가 과학사 및 과학철학을 전공했다고 다른 직원들에게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은 그것이 무슨 전공인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직장에만 있으면 나의 전공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내가 과사철 전공자이며 과사철 출신이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자 노력한다. 최근에 대구과학고등학교에서 과학철학 강의를 할 때마다 나는 내가 과사철 출신임을 떠올린다. 비록 지금은 과사철과 별로 관련이 없는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과사철 출신들에게는 일종의 자부심이 있다. 그것은 내가 졸업한 대학원이 적어도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대학원이라는 자부심이다. 대학원 출신 선배님들 중에 명성이 자자한 분들이 많다. 대표적인 인물을 든다면 서울대 홍성욱 교수님, 포항공대 임경순 교수님, 서울시립대 이중원 교수님, 서울대 임종태 교수님, 부산대 송성수 교수님, 경희대 최성호 교수님, 서울대 장대익 교수님 등이 계신다. 교육과정도 상당히 수준이 높다. 과학사 통론과 과학철학 통론 수업은 어려운 수업으로 유명하다. 나의 경험으로도 매 주마다 많은 분량의 논문들과 책을 읽은 후 비평문을 쓰고 수업시간에 토론에 임하는 것은 참으로 벅찬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힘겹게 수업을 끝내고 나니, 수업시간에 읽고 생각했던 내용들은 잘 잊히지 않고 아직까지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휴일인 오늘 나는 내가 새삼스럽게 과사철 출신임을 생각해보았다. 비록 지금은 공부와 약간 멀리 있지만, 분명 나는 과사철에서 공부했던 사람이다. 비록 과정의 선배님들처럼 유명한 교수가 되고 뛰어난 연구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나 역시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사랑하며 계속 이들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의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 있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계속 시간을 내어 공을 들이며 배워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나는 서양 과학사와 서양 과학철학 이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동양 과학사, 한국 과학사,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수업을 수강한 적이 없고, 관련 책들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공부를 못했다는 것은 설득력 없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과사철 밖의 사람들은 과사철 출신 사람들에게 과사철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대한 소양을 갖고 있을 것을 요구한다. 과사철을 졸업했으면 서양 과학사와 서양 과학철학 뿐만 아니라 동양 과학사, 한국 과학사, 과학기술정책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를 생각한다. 첫째, 과사철 출신으로서 틈날 때마다 과사철에 관한 공부를 꾸준히 하자. 둘째, 과사철 출신으로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동양 과학사, 한국 과학사, 과학기술정책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자.

  

   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내가 서울대학교 과사철을 졸업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과사철을 졸업한 사람이며, 과사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그에 걸맞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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