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

강형구 2017. 5. 20. 21:41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면 끝이 없으니, 나는 가급적 나에게 집중하면서 내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지를 주목하자. 내가 이런 생각을 처음 한 것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에는 모든 면에서 나보다 훨씬 뛰어난 친구들이 많았고,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다보면 스스로에 대해서 끝없이 낙담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 삶의 주인공은 친구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고, 나는 스스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 대상이 아니라 그저 나 자신으로서 살고자 했다.

  

   나에게 대입 수학능력시험, 대학에서의 학점 이수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나는 아주 뛰어난 사람들과 비교하면 이들 중 어느 것에서도 자랑할 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적어도 내가 스스로 설정한 나의 문제 안에서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시절 정말로 공부에만 몰두했다. 그것은 학점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한 공부였다. 나는 나 자신의 공부 이외의 모든 점에서 참 서툰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고, 이성과 제대로 사귀지도 못했다. 그래도 나는 심각하게 좌절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그저 내 인생 속에서 내가 해나가야 하는 일들을 나의 일정에 맞추어 해 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군대는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대학시절 나 스스로 육군 장교의 길을 걷겠다고 택했고, 다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장교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4개월 동안 육군3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던 시기는 참 고통스러웠고, 결국 나는 그 시기를 참아냈다. 육군정보통신학교에서의 시기, 홍천 11사단에서의 시기도 마찬가지다. 다른 동기들과 비교하면 나는 참 어설프고 위태로운 장교였다. 그렇지만 그 시절에도 나는 나를 다른 장교들과 비교하지 않고 그저 나 자신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지의 여부에 집중했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점점 홍천에 익숙해졌다. 부대 내의 같은 보직에서 1년이 지나자 일에서도 요령이 생겼고, 퇴근하고 나면 홍천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들을 읽을 수 있었다.

  

   전역 후 대학원에서도 맨 땅에 박치기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다. 텍스트가 이해가 안 되면 무식하게 읽고 또 읽었다. 배짱으로 밀고 나가 겨우 석사학위를 받았다. 동료들에 비한다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학위논문을 작성하였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당당하고 떳떳한 논문이었다. 이전까지 전혀 취직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바보같이 철학만 공부했던 나는 30살이 되어 처음으로 취직준비를 했다. 전에 공부해 본 적이 없는 헌법, 행정법, 행정학, 경제학을 꾸역꾸역 공부했다. 나이가 많고 인문학 전공자인 내가 취직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걱정도 자주 했다. 그래도 매일 조금씩 나아진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았고, 그런 삶은 나에게 보상을 해 주었다. 성공적으로 취직을 했기 때문이다.

  

   취직 후 결혼을 했고, 아내와 나 사이에서 예쁜 아이도 태어났다. 공부하는 것이야 아주 오랜 옛날부터 내 몸에 배인 습관이라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 분명하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은 직장인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점점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는 일이다. 이번에도 나는 나보다 더 뛰어난 주변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비록 지금은 너무도 부족한 직장인이자 가장이지만, 먼 앞을 내다보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면 좀 더 능숙한 직장인이 되고 좀 더 성숙한 가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오늘 드디어 우리 집에도 에어컨이 들어왔다. 아내와 내가 직접 하이마트에 방문해서 구입한 에어컨이었다. 작년에 아내와 나는 선풍기 세 대로 무더운 대구의 여름을 났다. 올해에야 비로소 우리는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의 힘을 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듯 나는 미숙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삶을 살고 있고, 이런 내 곁에 나의 아내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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